정은주 시인의 헌시
아, 이균영님
할 일이 참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단재 신채호 상을 받고 이상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내세울 게 변변찮았던 소도시 광양의 자랑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늙은 부모의 장남이었습니다.
그새 스물여섯 번의 가을이 지나갔습니다.
그 가을의 비보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쇠 종이 바로 귓전에서 울듯 멍하고 먹먹하였습니다.
믿고 싶지 않았던, 소설에도 쓰지 못할 황망한 사고였습니다.
역사와 문학이라는, 씨줄과 날줄 속에 팽팽하게 자리했던
그는 어디로 가 버렸을까요.
시대의 아픔을 품어 역사를 쓰고, 생의 외로움을 풀어 소설을 쓰던그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백운산 협동농장이라는 모티브로, 대한민국 근현대를 아우르는
대하소설을 쓰겠다고 했습니다.
주먹만 한 별이 달린 백운산 하늘과 골 깊은 백운산 자락은
그에게 커다란 글밭이었습니다.
유당공원과 빙고등과 동천과 남해바다는
靈感의 곳간이자 생생한 배경이었습니다.
젊은 그에게 지워진 광양의 기대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학계와 문단의 주목을 동시에 받는, 새벽하늘 별이었습니다.
그 모든 기대와 꿈을 두고 그는 홀연히 떠났습니다.
무엇이 그리 급했나요, 하늘이 시샘이라도 하였나요?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는 그가 아쉽습니다.
그는 갔지만, 큰 꿈을 다 펴보지도 못하고 갔지만
그는 이미 큰 나무였습니다.
귀하고 아름다운 나무였습니다.
그가 자란 뒷동산에 우리는 문학비를 세웁니다.
귀하고 아름다운 한 알의 씨앗이 숲이 되기를!
이 작은 뒷동산에서 저 끝없는 우주가 시작되듯,
그를 닮은 후배들이
시대를 관통하고 존재를 꿰뚫는 참 문학인이 되기를 발원하며
여기 문학비를 세웁니다!
그러니
임이시여,
이균영 님이시여,
부디 영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