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나의 에너지…정채봉 동화, 벽화에 담고 싶어”

도화지보다 벽이 더 좋은 이은미 씨의 벽화사랑

2018-05-04     김영신 기자

이은미 씨(50)는 여전히 벽화를 그린다. 우연히 봉사로 시작한 벽화그리기는 이제 은미 씨에게 도화지에 그리는 수채화보다 오래된 골목의 낡은 벽을 더 좋아하게 만든‘마약’이 됐다.

중학교에 다닐 때 미술선생님으로 부터 재능을 인정받은 후, 그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은미 씨는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붓을 잡았다.

‘기본기’가 있어서 그림 실력은 천천히, 눈에 띄게 좋아졌고 올해로 벌써 붓을 잡은 지 18년. 그동안 남농미술대전 입선, 광주광역시 미술대전 특선 등 여러 미술대회에서의 수상경력도 쏠쏠하다. 아름다운 풍경을 주로 화폭에 담는 것을 좋아하는 은미 씨는 개인전을 몇 차례 열 정도로 그림을 잘 그린다.

은미 씨에게‘그림을 잘 그린다’고 표현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주관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술, 음악, 시, 소설 등 모든 예술작품은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통속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보는 이에 따라 감흥을 얻고 안 얻고의 차이일 뿐 별다른 기준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기준으로 볼 때 개인전에서 만난 은미 씨의 그림들은 색채와 분위기가 아름답고 작품 하나쯤 집에 걸어두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은미 씨가 최근 마무리한 그림은 역시‘벽화’다.

송보7차 아파트 중앙경비실에 꾸민 ‘사랑의 한 평 카페’가 바로 은미 씨 작품이다. 벽화를 그리기 위해 은미 씨는 벽에 어울리는 도안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사랑의 한 평 카페’를 그릴 때도 그랬다.

자신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 도안들이 가끔은‘도용’이 의심되는 경우가 있어 속상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불편한 것을 그냥 참고 혼자 감내하는 성격의 은미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는 말이 가끔 적용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다.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지 6년째,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정말‘돈이 되지 않지만’그래도 벽화를 그리면 돈이 좀 된다. 특별히‘벌이’가 없는 은미 씨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물감을 사고 전시회를 가곤 할 때마다 남편에게 많이 미안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은미 씨가 그린 벽화는 광양·순천·벌교·여수 등 160여 곳 쯤 된다. 

가장 뿌듯했던 벽화작업은 순천의 어느 마을 벽화를 그렸을 때라고 한다. “온통 쓰레기로 가득 찬 그 집을 보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서 작업을 했는데 밑 그림작업을 하는 3일 동안 집주인 할머니가 단 한 번도 문밖을 나오지 않았다. 그러더니 꽃을 든 소녀, 구절초 꽃 무더기, 동화 속에 나오는 귀여운 여우에 색을 입히고 벽이 예뻐지기 시작하자 할머니가 그제야 내다보며 라면을 끓여 주었다”고 말했다. 은미 씨는 그런 할머니가 오히려 고마워서 자전거와 능수버들을 추가로 그려 넣어 주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1년에 한 두 번은 그림으로 봉사를 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며“앞으로도 계속 벽화를 그리겠다”고 말하는 은미 씨는‘벽화 그리는 여자’가 확실하다.

광양중학교 건너 낡은 벽의 코끼리, 광양시립중앙도서관 앞 골목길 벽화, 향교근처 저태길 벽화, 칠성리 어느 골목 벽화, 서천변 전봇대 그림, 사곡 억만마을 벽화 등 그녀의 그림은 광양읍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다. 동화작가 정채봉을 좋아하는 은미 씨는 정채봉 작가가 문학의 자양분을 쌓았던 광양읍 골목 어느 낡은 벽에 작가의 작품을 그려봤으면 좋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