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풍이라 큰일” 농민 시름 ‘가득’

남아도는 쌀 … 농협 수매가 하락

2015-10-23     김보라

지난 21일 오전 10시 광양읍 세풍리에 위치한 광양농협 미곡처리장 앞.
짐칸 가득 벼를 실은 1톤 트럭 20여대가 1시간째 줄을 서서 대기중이다. 지게차 3대가 열심히 포대를 내려 옮기고 있지만 감당할 수 없이 밀려드는 물량에 대기줄이 쉽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바로 옆에서는 새까맣게 그을린 농부들이 삼삼오오 모여 한숨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띈다. 화제는 단언 ‘올해의 수매가’. 어두운 표정이 말해주듯 대다수는 “올 농사 헛지었다”며 한숨을 내쉰다.

광양 쌀 수확량, 평년 대비 10% 늘어

올 쌀농사는 대풍이다. 예로부터 풍년이면 마을 잔치를 벌였는데, 요즘은 풍년일수록 농부들의 근심만 깊어진다. 벌써 3년째 이어진 풍년에 쌀은 남아도는데 소비량도 줄어 제 값 받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의 공공미 비축 역시 예년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역 농민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특히 광양 지역은 평년에 비해 쌀 수확량이 10%정도 늘면서 전국 쌀 생산량 증가를 이끌고 있다. 시에 따르면 올해 광양에서는 1635ha에서 1만2308톤(조곡 기준)의 쌀이 생산될 것으로 보인다. 1658ha에서 1만 194톤이 생산된 지난해에 비해 면적은 줄었지만 생산량은 3%정도 늘었다. 가뭄이었지만 수리시설이 잘 갖춰져 영향을 받지 않았고 태풍이나 병충해 피해도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 수확된 쌀 중 1487톤은 공공비축미로, 720톤은 학교급식으로 소비된다. 나머지는 광양농협이 매입하거나 자체 소비된다. 광양농협이 지난 5일부터 21일까지 광양 전 지역 산물벼(건조되지 않은 벼)를 수매한 결과 2500톤이 걷혔다. 농협 관계자들은 산물벼 수매가 마무리 되는 이달 31일이면 3500여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쌀 값은 그대론데 벼 값은 떨어진다?

과잉공급으로 인해 올 12월 결정되는 광양농협의 산물벼 수매가가 40kg당 4000-5000원 정도 낮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자 농민들의 근심이 깊어졌다. 하지만 정작 소비자들은‘벼 값은 떨어지는데 왜 쌀값은 안 떨어지냐’는 반응이다. 이는 유통망에 있어 ‘농협 의존도’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농민들이 각자 집에서 벼를 말려 정미소에서 도정한 후 쌀가게 등을 통해 판매했다. 즉 직접 쌀 가격을 책정해 판매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손 부족과 고령화, 비용 문제 등으로 농민들이 지역농협에서 운영하는 종합미곡처리장에 가공과 유통을 일임하는 농가가 많아졌다.

수확한 벼(산물벼)를 그대로 농협에 넘기면 연말쯤 산물벼 값을 결정해 최종 정산해주는 방식이다. 수매한 만큼 팔리면 다행이지만, 광양농협이 한 해 동안 팔 수 있는 양은 최대 2500여 톤에 불과하다. 이대로라면 올해는 1000톤 정도가 재고로 쌓인다는 얘기다.

허순구 광양농협 상무는 “지난해 3200톤의 산물벼를 수매했는데 이로 인해 5억 여원의 적자를 기록했다”면서 “올해는 더 심각해 이미 판매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었는데, 가공과 판로 개척이 힘든 농민들을 생각해 손해를 감수하고 수매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쌀 소비 운동’과 판로 개척이 해법

매년 반복되는 쌀 문제, 농민이나 농협 관계자들은‘범시민적 쌀 소비 운동’이 해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농민은 “쌀을 많이 사먹어야 한다고 말만 하지 말고,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한다”면서 “이런 문제는 개인이 할 게 아니고, 광양시가 나서서 대대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청이나 포스코 등 관내 굵직한 기업체의 구내식당에서 광양쌀을 의무적으로 소비하고, 동광양농협과 홈플러스 등 유통업체에서도 광양쌀 판매에 적극 나서주면 광양쌀의 판매량이 늘지 않겠냐는 기대감이다. 여기에 로컬푸드 매장과 온라인 등을 활용한 직거래를 활성화하는 것도 농민들의 시름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이다.

세풍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장익(30)씨는 “젊은 농민들은 인터넷, 전화 주문 등으로 직거래 하다 보니 별 문제가 없지만 어르신들이 많다보니 농협에만 판로를 의존하고 있어 발생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나 시민사회단체들이 판로를 함께 고민하고, 개척 방법을 교육하고. 직거래 장터 기회 등을 더 많이 마련해주면 상황이 좀 더 나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공공비축미 물량을 늘리기 위해 도에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고 남은 쌀은 농협이 사들일 것”이라면서 “캠페인은 일회성일 뿐, 식당 등에 저가에 공급되는 관외쌀이 문제지, 시민들이 광양 쌀만 먹는다고 가정하면 소비량을 충족 못 시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