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의 매력
이선영 식음료아카데미 로스뱅 강사
2013-12-08 광양뉴스
필자도 요즘은 예가체프니 케냐 AA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처음으로 갔던 카페에서의 일은 지금도 웃지 못 할 기억으로 남아있다. 저렴한 가격과 그럴싸한 이름에 혹 해서 시켰던 에스프레소는 여러모로 나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작은 잔과 양도 양이지만 무엇보다 처음 입에 가져다 댔을 때의 진한 쓴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친구 앞에서 자존심에 맛을 느낄 겨를도 없이 한 번에 마셔야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사실 에스프레소라는 커피를 생각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 맛을 쓴 맛 만으로 규정지어버린다. 과거에 필자 역시 그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에스프레소는 쓴 맛만으로 정의되기에는 아쉬운 점이 너무 많은 커피이다. 다른 커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매력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를 받으면 작은 잔을 가득 채운 황금빛의 크레마를 먼저 확인할 수 있다.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너무 적으면 신선하지 못하다거나, 너무 짙거나 옅으면 추출이 잘 된 것이 아니라는 것 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크레마는 커피빈의 지방성분과 이산화탄소 그리고 향을 가득 머금고 있는데, 잘 맡아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커피의 향 이외에도 꽃이나 과일, 허브계열의 향들을 느껴 볼 수 있다. 거기에 부드럽고 상쾌한 느낌, 고소하고 단 맛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에스프레소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에스프레소를 입에 한 모금 머금게 되면 살짝 단맛이 스쳐지나가며 커피가 입안 가득한 느낌을 받게 된다. 다른 커피에서 마셨을 때의 찰랑찰랑한 느낌과는 다른 묵직한 감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을 바디감이라고 한다. 이 바디감을 느끼기 위해 에스프레소를 찾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앞에서 말했듯 에스프레소하면 쓴 맛을 생각하게 되는데, 신맛 역시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이 두 맛의 균형이 잘 이루어져야 좋은 에스프레소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커피에서 신맛이 난다고 하면 많이들 의아해 한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커피빈은 많은 산성분을 가지고 있다. 원두 자체가 신 맛을 특징으로 가진 것들도 있지만, 에스프레소 추출 과정에서 물의 압력, 온도, 커피가루 입자의 크기, 탬핑의 정도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신맛과 쓴맛의 정도가 달라진다. 조화를 이루며 상쾌하게 입안에 감돌다 깨끗하게 사라지는 신 맛과 쓴 맛은 에스프레소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처음 만난 날부터 마음이 맞아 친해지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오래 만나면 만날수록 그 진가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에스프레소도 그러한 것 같다. 처음엔 강렬한 쓴 맛으로 우리를 반기지만 점점 그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매력적인 향과 깨끗한 신 맛과 다른 커피에선 느끼기 힘든 크레마와 바디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겨울엔 작지만 매력 있는 이 친구와 친해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