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설움 대변한 비운의 황녀
도서관에가면 소설 ‘덕혜옹주’(권비영 지음/다산책방)
2012-02-20 이성훈
이번 주에는 가슴 먹먹한 책 한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비운의 황녀를 그린 소설 ‘덕혜옹주’를 읽노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슬픔과 울분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강포와 억압에 떨기만 하는 옹주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조선을 살릴 마지막 끈이 끊어지는 듯한 절망감을 느낄 수 있다.옹주(翁主)는 조선 시대, 임금의 후궁(後宮)에게서 난 딸을 이르던 말. 덕혜옹주는 1912년 5월 25일에 태어나~1989년 4월 21일 생을 마감했다. 일제 강점기의 조선 귀족인 덕혜옹주는 고종이 60세가 되던 해에 후궁 복녕당 양씨 사이에서 얻은 서녀였다. 왕족의 신분이라면 그만큼 화려하고 권력을 유지하며 살았을 터인데 덕혜옹주의 삶은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나라의 모습과 일치해서 독자들의 마음을 더욱더 아프게 한다. 옹주의 한평생은 항상 그늘이었다. 딸인 마사에가 실종되어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정신질환은 심해졌고, 1945년 일본 패망 이후로는 신적강하로 평민이 되어 생계와 치료에 곤란을 겪기도 했다. 가장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가장 외롭게 생을 마감했던 덕혜옹주. 소설 ‘덕혜옹주’는 어린 나이에 고종황제의 죽음을 목격한 후, 일본으로 끌려가 냉대와 감시로 점철된 십대 시절을 보내야 했다.
이후 일본 남자와의 강제결혼, 10년간의 정신병원 감금생활, 딸의 자살 등을 겪으면서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쇠약해진다. 치욕스러운 시간 속에서 그녀를 붙들었던 건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삶의 터전을 되찾겠다는 결연한 의지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은 해방 후에 그녀를 찾지 않는다. 게다를 신고 기모노를 입고 창가를 부르는 덕혜옹주의 모습을 책속에서 보노라면 조선의 멸망과 설움을 한꺼번에 읽어낼 수 있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딸조차 지켜내지 못하고 독살 당한 아버지 고종은 꿈속에까지 나타나 덕혜옹주에게 원한을 풀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덕혜옹주는 꿈속에서 조차 그 아비의 소원을 들어 주겠다 약속하지 못하는 나약한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제적으로 잊힐 수밖에 없었던 마지막 황녀의 발자취. 저자는 덕혜옹주가 남긴 발자취를 하나하나씩 따라가며 일본의 치밀한 계략대로 조국에게 외면당한 황녀의 고립과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설움을 독자들의 가슴을 후벼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