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에서 희망 찾기

라 종 렬 목사 / 마하나임커뮤니티교회

2006-09-28     광양신문
70년대 후반에 세계적인 인기를 모았던 책 중에서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라는 책이 있다.

서아프리카 잠비아에서 태어난 쿤타킨테의 노예 여정을 그린 책이었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방영한 적이 있는 이 이야기는 어릴 시절 잊혀 지지 않는 깊은 인상을 준 책 중 하나이다.

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흑인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바로 아는 것을 통해서 알렉스 헤일리와 그 책을 읽는 많은 흑인, 그리고 여타의 독자들은 자신을 좀 더 알고,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인과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인간이 종교를 갖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는 자신의 뿌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지금 왜 여기에 있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종교를 통해서 해답을 얻기 때문이다.

그냥 우연히 생겨난 산물인가? 아니면 창조자의 피조물인가에 따라 사람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분명 달라진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그러한 사실을 통해서 힘을 얻고 다시금 현실의 삶에 더욱 충실하게 하기도 한다.

역사연구는 단순한 과거로의 회기를 꿈꾸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통해서 오늘의 나를 바로 알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영토 분쟁이 일어나면서 하나는 밑에서 날로 먹으려 하고, 또 하나는 위에서 거저 먹으려고 달겨 든다.

그 틈새에서 우리가 그토록 무시하고 왜곡했던 그 역사연구의 필요성을 절감케 한다.

그들이 그토록 역사를 왜곡하는데는 모두가 미래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이렇게 방치한데는 과거를 과거로만 보고 간과한 어리석음 때문이었으리라.

앞만 보고 달려갔던 우리들을 다시 돌아 보게 하는 이런 사건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쓴 약이 되길 기대해 본다.

이제 며칠 후면 추석이어서 다들 고향에 가고 또 오게 될 것이다. 가족끼리 둘러 앉아 지난 일들을 회상케 하고 뿌리를 교육하며 감사하게 했던 이런 절기를 만든 선인들의 지혜가 무엇이었는가를 새삼 느끼게 한다.

농경사회에서는 너무도 소중한 시간인데 일년에 한두 차례이어도 그 의미들을 잘 지켰지만, 정보산업사회에서는 이런 추수감사의 기쁨이 일 년이 아니라 매달 아니 거의 매일 일어나는 데도, 의외로 이런 시대에 오히려 더 뿌리를 모르거나 소홀히 하는 경향이 더 많은 것 같다.

이젠 아픈 역사건 부끄러운 역사건, 자랑스러운 역사건 간에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개인사(個人史)나 가족사(家族史)이든 국사(國史)든 세계사(世界史)건 간에..

필자는 가끔 깊은 생각을 해야 하거나 충전이 필요할 때면 고향을 찾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곳에 가면 어린 시절 뛰어 놀던 놀이터나 냇가, 그리고 학교, 고향 교회 등을 돌아보기도 한다. 물론 지금은 많이 변해 버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이나 흔적들을 만나 볼 때면 그 시절 품었던 생각들을 회상하게 되고, 지금의 처지가 그 시절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것을 얻고 누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변함없이 고향을 지키며 이제는 너무 늙어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해도 반가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맞이해 주는 그런 어른들을 뵙고 이야기 할 때에는 불현듯 불평하고 지친 내 마음을 추스르기도 한다.

그 시절 생각도 못했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고 그래서 다시 새로운 희망을 가슴에 품는 것이다. 이처럼 각박한 도시에서는 찾을 수 없는 시간들을 그곳에 가면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깊은 사색을 가능케 한다.

주위에 지인들이 여러 가지로 생활이 어렵다 하고,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사업을 포기하는 일들을 지켜보면서 무척 마음이 아프다.

어떻게든 그분들이 포기하지 않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마음의 여유와 용기를 갖길 바란다.

우리는 분명 어제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알고, 누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번 추석여정에서 고향에 가거든 그런 용기와 희망을 품고 오길 소망한다. 풍성한 이 가을에..
 

입력 : 2006년 09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