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찾아주기·추모 공원 조성 등 제안
‘평화를 남기고 간 광양 소녀’로 불리는 문명금 할머니의 21주기 기일 추모제가 3일 오후 6시 광양역사문화관 소녀상 앞에서 개최됐다.
신임순 YMCA 청소년인권센터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유언리본달기와 공연 등 식전행사에 이어 문 할머니의 약력소개와 추모시 낭독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문명금 할머니는 1917년 6월 19일 광양군 진상면 구황리에서 머슴을 살았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8세가 되던 1935년 봄 친구들과 함께 하동에 갔다가 공장에 취직을 시켜주겠다는 일본인의 말에 속아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항에서 러시아 접경지역인 중국 헤이룽장성 손오현이라는 낯선 땅에 던져진 그는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10년 동안 위안부로 지옥을 경험했다.
패망한 일본군이 그곳 위안부를 데리고 떠날 때 혼자 숨어 있었던 그는 위안소 인근 조선 사람이 모여 있는 마을로 내려가 모진 삶을 이어갔다.
1998년 4월 중국의 손오현 양로원을 방문한 혜진 스님이 국내에 할머니의 생존 사실을 알렸고, 국내 위안부 할머니와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1999년 2월 고국 땅을 밟았다.
문 할머니는 같은 해 9월 7일 3개월간의 임시체류기간을 마치고 중국으로 갔다가 그토록 가지고 싶던 대한민국의 국적 회복허가를 받고 영구 귀국해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다 1년여 뒤인 2000년 11월 3일 심근경색 등 합병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고국에 돌아온 할머니는 2000년 6월 일본군위안부로 등록돼 정부와 정의기억연대로부터 받은 생활지원금 4300만원을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실위원회’에 기부했다.
문 할머니의 고귀한 삶을 기리고 그 뜻과 정신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문명금 평화상'을 제정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상은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문 할머니의 ‘고향 찾아주기’와 ‘평화의 상’ 제정, 영정·조각상 제작, 공원조성 등의 사업을 제안했다.
특히 그의 고향은 광양군 진상면 구황리지만 할머니가 생을 마감한 나눔의 집에서 추모의 의미로 제작된 조각상에는 부산 수영구로 돼 있어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