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을 내기 위해 많은 양념을 첨가하게 되는 음식들, 가지를 자르고 혹은 비틀어 억지로 꾸미는 나무나 꽃의 정원. 부족한 자신을 과장해 늘어놓는 수다.
이 모든 것들이 순수함을 뒤로하고 가식으로 포장하는 인간들의 욕심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내가 몽골을 직접 겪으며, 그 산하와 그들의 삶을 직접 부딪혀보고 느낀 감정이 그것이다. 요즘 동물학대에 관하여는 입을 모으면서도 식물(나무, 풀 등) 학대라는 말은 아직 나오지 않아 안타깝다.
몽골 중앙 북부에 있는 흡수골 호수는 푸른 진주라는 별명을 가진 세계적으로 유명한 청정호수이다. 세계 최대 호수인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와 연결되어 있다. 사실 바이칼 호수는 몽골의 잃어버린 땅이다.
이 흡수골 호수의 물은 컵만 있으면 그냥 떠 마시면 된다. 그만큼 깨끗하다. 가끔 얕은 곳에는 가축의 배설물이 보이긴 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고 떠 마신다. 몇 사람과 함께 흡수골을 가는 길에 산 속에서 비박을 했다. 밤이 늦어서야 도착했으므로 바로 텐트를 치고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산 속 아침 풍경에 넋이 나가고 말았다. 쭉쭉 뻗어 서 있는 침엽수림 사이로 반짝이는 아침 햇살이 숲속 구석구석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텐트 주변에는 빨갛게 익은 딸기가 지천이었다. 물론 옮겨심기를 하지 않은 것이라서 크기는 매우 작았다. 하지만 그 맛은 꿀처럼 달았다.
같이 간 몽골 친구가 나갔다 오더니 모자에 한가득 베리를 따왔다. 맛보다는 향이 더 좋았다. 산 중턱에 자그마한 게르(몽골 전통가옥)에 사시는 어르신에게서 차(수태채)와 우유를 비롯해 청정 요구르트, 우유 과자(아롤)를 대접 받았다. 세상의 어떤 요구르트 보다 더욱 진하고 고소했다.
어르신의 삶을 듣고 있자니 한 젊은이가 들어왔다. 아들이란다. 서른 살인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 산에서 가축과 함께 사는 것이 무엇보다 행복하다고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이제 60이지만 아직도 가축을 다루는데 최고의 목동이라고 하였다. 기자보다 두 살 위인 그의 아버지에게 나는 계속 할아버지라고 하였다. 이제 와서 형이라 고쳐 부를 수도 없어 헛웃음만 나왔다.
어느 날은 학생 서너 명이 나의 등산에 동행하기로 약속하고, 목적지를 말했더니 손사래를 쳤다. 그 산에는 낮에도 곰이나 늑대가 출몰해 위험하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낮은 산을 택해 올라갔다. 한참을 가다가 바짝 마른 풀 사이에서 독사를 만났다.
깜짝 놀라 물러서는데 뒤에 따라오던 아이들이 누가 먼저 발견했느냐고 아우성이었다. 내가 먼저 봤다고 하니 한 턱을 내라고 다그쳤다. 이유를 물으니 뱀을 보면‘큰 행운’이 온다는 것이다. 10여 년을 사는 동안 그때 만난 그 뱀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건조한 나라(통상습도 3,40%)라서 파충류가 살기에는 부적당한 환경 탓에 그만큼 보기가 어려운 것이리라.
이 나라의 나무가 없는 산은 매우 척박하다.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휴식하는데 한 아이가 목마르면 드시라고 이름 모를 풀을 가져왔다. 이름은 잘 모르지만 산에서 목을 축이는데 이 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물이 많아 청량감이 좋은 풀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야 한국에 와서 그것이 다육식물(와송)이란 걸 알았다. 다만 우리 주변에 있는 와송 보다는 통통한 게 달랐다.
나무가 없는 풀밭에서 하얀 꽃의 무리를 발견했다. 말로만 듣던 에델바이스였다.
몽골에서는 이 꽃을‘산에 피는 하얀 꽃’(차강올린체첵)이라 부른다. 눈을 들어 사방을 훑어보니 에델바이스 꽃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또한 어디든 여행하는 내내 감탄사를 연발한 것은 초원의 꽃들이었다.
길가에는 수백 미터의 매밀 밭이 하얀 비단을 깔아 놓은 듯 아름답고, 끝도 없이 계속 되는 벌판에 자유롭게 어우러져 피어 있는 형형색색의 꽃밭, 그 꽃밭에서 시끄러울 정도로 울어대는 메뚜기와 풀무치 등의 곤충소리, 낯선 동물(우리들)이 침입했음을 알리는 설치류가 외치는 고함 소리, 지진이 만들어 낸 수백 킬로미터의 계곡에 난간 하나 만들지 않고 자연의 신비를 그대로 보여주는 무심한 듯 세심한 배려, 손대지 않은 그곳의 자연에 감동하여 감히 불손하게도 이름을 지어주었다.‘조물주의 정원’이라고 말이다.
사람의 욕심으로 훼손되지 않은 몽골의 자연! 그곳이 태초부터 그 자리에 있던 진정한 자연이 아닐까? 또한 그곳에 사는 사람들 역시 자연 닮아 나보다 많이 순수했다.
오학만 어르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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