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귀농 일기<17> 도깨비 풀
천방지축 귀농 일기<17> 도깨비 풀
  • 광양뉴스
  • 승인 2018.12.14 19:35
  • 호수 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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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식 시민기자

농한기가 시작 되었다. 봄까지 아무 일 없이 보내는 게 아니고 시간 날 때 마다 매실나무와 감나무 가지치기를 하며 봄을 기다리게 된다.
며칠 전 전동가위를 빌려서 매실나무 전정을 끝냈다.
농기계 임대 사업장이 가까운 곳에 있어 필요한 농기구를 쉽게 빌려 쓸 수 있지만, 한꺼번에 기계를 원하는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에 빨리 끝내고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하루 임대비용 만원으로 3일까지 빌려 쓸 수 있다. 수 백 만원 하는 기계를 단돈 만원에 빌려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며칠을 시내에 있는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잘라놓은 가지를 치우려고 시골집으로 왔다.
작업복을 입고 노끈을 챙겨 매실나무 가지를 줍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지났는데 싫증이 나기 시작한다.
겨울이 시작되고 수은주 눈금이 처음으로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라서 그런지 마을이 너무 조용하다.
추운 날씨 때문에 일을 하기 싫은 게 아니고“이 추운 겨울에 조샌집 사위(겉보리 서말만 있으면 하지 않는다는 처가살이를 하고 있다)는 산에서 일을 하고 있더라”는 말을 하며 수근 거릴까봐 그게 두려워 그만 하기로 했다.
처가동네에 살고 있는 게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엔 어지간하면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농사를 지으면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일 하는데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주말 밖에 시간이 없는 그분들은 그때 농사일을 몰아서 한다. 좁은 산 길 에서 경운기와 화물차가 만나기라도 하는 날이면 서로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수확한 농산물을 싣고 내리는 장소까지 자동차가 진입하지 못하고 그 사람의 차가 빠져 나온 다음에 올라가야 하는 일도 있다. 밑에서 기다리는 차 때문에 하던 일을 멈추고 비켜주려고 오기가 쉽기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시간이 많은 나는 주말을 피해 농사일을 하고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도 이렇게 시간이 많은데 오늘 같은 날 가지를 치우겠다고 부지런을 떠는 게 청승맞게 생각되어서 대충 마무리 하고 농막으로 내려 왔다.
신발을 벗고 농막으로 들어가려는데 바지에 붙어 있는 도깨비 풀(도깨비바늘)이 엄청나다.
이때쯤 도깨비바늘은 살짝만 스쳐도 진드기처럼 착착 달라붙는다. 잘 익은 씨앗이 번식을 위해 이동을 대기하고 있다가 바람이나 동물들의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고 이용하기 때문이다.
한해살이풀이지만 번식력이 좋아 신경 써서 제거하지 않으면 오늘 같은 낭패를 겪게 된다.
방문 앞에서 바지를 벗고 팬티 차림으로 전기장판을 켰다. 겨울이라 주변에 사람도 없지만 그 옷을 입고 방 안으로 도저히 들어 갈 수가 없었다.
허벅지에 닭살이 돋기 시작할 무렵, 오랫동안 비워있던 방바닥이 따뜻해지기 시작한다.
엉덩이로 방바닥의 온기를 느끼며 양쪽 다리를 문턱 밖으로 내놓고 도깨비바늘을 떼기 시작했다. 떼 내도 떼 내도 끝이 없다.‘차라리 버리고 새로 살까!’라는 생각도 해 봤지만 시간이 지나면 끝이 보일 거라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양손을 움직였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고 도깨비바늘 제거 작업이 끝났다. 청바지를 입지 않고 산에 올랐던 게 오늘처럼 후회스러운 적이 없다.
3월 말부터는 매일 고사리 산을 올라야 한다. 도깨비바늘에게 시달릴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도깨비바늘을 우리 마을에서는‘도둑놈 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린순은 살짝 데쳐서 물에 담갔다가 나물로 먹기도 하고 술을 담그기도, 말려서 차로 마시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