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진월면 망덕포구의 오래된 허름한 목조 건물 국문학자 정병욱 가옥.
근대문화유산 341호로 지정된 정병욱 가옥 건물에 얽힌 이야기를 광양시민들도 잘 알지 못한다. 등잔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물론 많은 학자들이 정병욱 가옥에 얽힌, 우리의 민족시인 윤동주와 정병욱의 이야기를 많이 연구하고 있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새삼 그들의 이야기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고장의 자랑스러운 유산이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일제 강점기 때 북간도 명동촌에서 1917년 출생해 평양의 숭실중학교에 잠시 수학 한 뒤 연희전문대학, 지금의 연세대학 문과를 졸업했다. 연희전문대학에서 윤동주와 정병욱은 기숙사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한다.
일제 말기 우리민족사에 가장 어렵고 비참했던 미망의 시기에 나라 잃은 설움을 뼈속까지 절규하는 아픈 청춘들이었다.
윤동주는 어린시절부터 글쓰는 재주가 뛰어 났으며, 기독교 집안의 청교도적 가르침이 몸에 밴 학생이었다. 윤동주의 시는 시대적 아픔의 영향도 있었지만 그의 시는 아픔과 부끄러움의 미학을 바탕에 깐 아름다운 우리말로 쓴 서정시이며 저항시이다.
윤동주는 연희대를 졸업하고 일본의 릿교대를 거처 도지샤대 영문과에 진학 하였으며, 1943년 귀향직전 항일 운동의 혐의를 받고 일경에 검거 2년형을 선고 받고 1945년 2월, 28세의 젊은나이로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은 일제의 철저한 증거 인멸로 지금도 베일에 가려진채 영원한 숙제로 아픔을 전한다.
일본으로 가기전 육필원고를 정병욱에게 맡겼고, 정병욱은 그 원고를 광양집 어머니에게 맡기면서 잘 보관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남기고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그의 어머니는 양조장 마루 밑에 명주보자기로 싸고 또 싸서 숨겨 두었다.
그 뒤 해방된 조국에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나왔다. 영원히 묻혀버릴 수 있었던 아름다운 시와 시인이 부활되었고, 윤동주와 정병욱의 우정을 간직한 채로 망덕포구의 정병욱 가옥은 우리 곁에 있다.
북간도에서 태어난 윤동주의 제2의 고향은 광양이 아닐까? 나만의 생각일까. 망덕포구는 정병욱과 윤동주의 못 다한 이야기를 전하려는 듯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의 날개 짓이 예사롭지 않다.
윤숙자 어르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