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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 귀농 일기<13> 가을이 익어 가고 있다
이우식 시민기자
[783호] 2018년 10월 26일 (금) 15:14:50 광양뉴스 webmaster@gynet.co.kr
   
 

마을 앞 청암뜰의 논들이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벼 논 주변의 신작로 한쪽 차선은 거기서 온 나락들이 길게 드러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고구마를 심었던 밭 주변 담장엔 고구마 줄기가 빨래를 널어놓은 것처럼 걸려 있다.

초식 가축을 키우는 사람들이 쉽게 가져 갈 수 있게 배려를 해 준 밭주인의 따뜻한 마음까지 함께 걸려 있다.

잘 익은 대봉 감 홍시가 마을 담장 곳곳에 올려져 있으면 가을도 함께 무르익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쉽게 가져 갈 수 있게 땅에 떨어져 있는 걸 올려놓고 지나가는 게 무언의 약속처럼 마을에서 지켜지고 있다.

온 동네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감나무에 매달린 감들도 새로운 주인을 찾아 떠날 준비를 마치고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아랫집 노부부가 함께 타고 대문을 들어서는 경운기엔 들깨 다발이 가득 실려 있다. 들깨를 털고 나면 자잘하게 다발을 만들어 뒷마당 한쪽에 차근차근 쌓아 놓는다. 고추대와 함께 추운 겨울날 아랫목을 따뜻하게 데워줄 땔감으로 쓰기 위함이다.

양쪽 볼이 터지도록 도토리를 가득 넣고  분주하게 겨울을 준비하는 다람쥐처럼 우리들의 겨울 준비도 생활 속에서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다.

   
 

집 주변의 감나무와 매실 나무도 겨울 준비에 들어갔다.

마당이 지저분해지기 시작했다.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된 것이다. 울긋불긋 예쁜 가을 옷으로 바꿔 입혀 떠나보내고, 앙상한 가지만 남겨야 삭풍에 맞선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리고 비워야 살아남는다”는 가르침을 주는 고마운 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며칠 전까지 목이 터져라 울던 매미들도 자취를 감췄다. 진짜 목이 터져 죽었는지, 가을이 오는 걸 눈치 채고 떠났는지, 갑자기 잠잠해졌다.

여름을 노래하는 녀석들이 가을을 노래하는 풀벌레들에게 무대를 양보하고 떠나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내년 여름에 다시 오겠습니다”라는 말을 마을사람 누군가에게는 하고 갔을 거라 믿는다. 실컷 노래할 수 있는 무대를 사용료 한 푼 받지 않고 빌려줬기 때문이다.

가을이 익어 가고 있다. 가을 색깔 참 좋다. 가을 냄새 너무 좋다. 농부의 마음까지 넉넉하게 하는 계절이 옆에 와 있다.

금년엔 감 말랭이를 다 깎을 때까지 오랫동안 데리고 있을 생각이다.‘호호’손등 불어 가며 감 깎기가 너무 싫기 때문이다.

새벽까지‘웅웅’거리며 일을 하는 낡은 보일러 소리에 잠을 설친다. 가을이 깊어 갈수록 일 하는 시간이 늘어가는 늙은 보일러가 불쌍해지는 계절이다.

야근 수당은 감 팔아서 주겠노라고 미리 양해를 구했는데도 수은주의 눈금이 곤두박질 칠 때면 자주 파업을 하는 성질 고약한 분이라서 늘 조심스럽기만 하다.

동이 트기 시작 한다. 등짝을 방바닥에 붙인 채 이불을 끌어당기며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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