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 광양>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
<신바람 광양>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
  • 광양뉴스
  • 승인 2018.09.20 18:33
  • 호수 77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풍년이 돼도 걱정하는 농민과 서민이 없길 바라며…
이경희 어르신 기자

사람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것이 의식주고, 이 모든 것의 근원은 농업이다. 그래서‘농자천하지대본’이라 하지 않는가?

고려시대에는 농업을 장려하기 위해 수령 5사가, 조선시대에는 수령 7사가 있어서,  수령이 임지에서 가장 첫 번째로 수행해야 할 일이 농업을 장려하고 흥하게 하는 일이었다. 당시에 농업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관리들에게는 항상 수탈의 대상이었으며, 소작농들은 이앙법이 보편화되면서 광부나 상공인으로 직업을 바꾸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토지조사국을 설치해 기한부계약제 등으로 소작농의 경작권이 박탈되기도 하였으므로, 국가나 사회의 변화에 어쩔 수 없이 이농현상은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산미 증식운동이나 1920년대 말에 발생한 세계대공황의 타개책으로 남면북양정책 등 농민들의 피해가 극도로 심했던 때이기도 했다.

그 후 해방이 되면서 전형적인 농업국이었던 관계로 농업협동조합의 설립과 농지개혁은 국민의 큰 관심사였지만 그 활동이 미진하다가,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지금의 농업협동조합 즉 농민이 자주적으로 협동조직을 통해 농업생산력의 증진과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고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도록 설립된 특수법인체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농민들은 절기가 돌아오면 논밭을 갈고, 곡식이나 필요한 씨앗을 적기에 뿌려서, 열심히 가꾸고 거두는 일이 일상 생활이었고 농사는 한 가정의 생업이며 주업이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참아가면서 대를 이어 농사를 지으며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 효도의 근본으로 알고 이를 지키며 살았다.

특히 종자 고르기는 농업인으로서 사명감으로 알아 자기 집 가계의 혈통만큼이나 소중하게 다루며 살았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급격한 사회변화와 산업의 발달로, 힘들고 어려운 농업을 떠나려는 사람이 늘어나 농촌에서는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농업은 인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 이기에 묵묵히 농토를 지키며 기후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농민들의 마음은 날씨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올해 여름은 다른 해보다 유난히 높은 온도에‘전국 폭염특보’가 발효된 날이 너무 오래 지속되었으므로, 농사의 결실이 어찌 되려나 노심초사하며 논으로 밭으로 다니면서 쉴 틈 없이 농작물을 가꾸고 보살폈기 때문에, 이제는 가을의 수확을 기쁘게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태풍으로 인해 낙과가 많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하기도 했지만 들에 나가보면 황금빛 벌판이 눈앞에 들어오는 것은 그동안 수고한 농민들의 땀방울이 맺힌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농민들의 수고를 잊고 지나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수입상품에 밀리고, 기후변화에 따라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우리 농산물, 이제는 서민들과 농민들이 같이 잘사는 사회가 되도록 농업협동조합과 정부가 긴밀하게 협조하고 노력해서 농산물의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시켜서, 풍년을 맞고도 걱정하거나 어려워하는 농민과 서민들이 없도록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