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귀농 일기<8>
천방지축 귀농 일기<8>
  • 광양뉴스
  • 승인 2018.08.17 19:12
  • 호수 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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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일상

 

오늘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이우식 시민기자

어둠이 물러가는 새벽 5시쯤, 열대야에 시달리며 수면이 부족한 상태에서 작업복을 챙겨 입고 고추 밭으로 나갔다.

폭염으로 고추 잎이 시들시들해지는 게 걱정이 돼서 늦게까지 누워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제와 다르게 생기를 띠며 농부를 맞이하는 고추 잎이 고맙기 그지없다.

밤새 내려준 이슬이 뜨거운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생명줄 역할을 해 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며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탄저병 걸린 놈, 칼슘 부족으로 꼭지가 노랗게 변하면서 떨어지기 직전에 있는 놈, 담배나방의 공격으로 구멍이 뻥 뚫린 놈, 칼라병(바이러스)에 감염돼 알록달록 무늬가 생긴 놈 등을 따 내면서 한참을 둘러보다 보면 태양이 떠오르면서 온 몸이 땀범벅이 돼 간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지는 시간(오전9시)에 밭에서 나오긴 하는데 뜨거운 햇볕에 온 몸이 노출 돼 있는 농작물을 생각 하면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다.

계속되는 폭염에 온열 환자가 수 십 명 씩 발생하고, 폐사된 가축이 수백만 마리라는 뉴스가 매일 반복 되는데도 이렇게 견뎌 주는 밭작물이 대견하면서 고맙기까지 한다.

요즘은 노동의 댓가를 샤워하는 시간으로 보상 받는다.

땀에 흠뻑 젖은 옷을 찬물을 끼얹는 순간의 행복함이 있기에 땀 흘리는 게 두렵지 않다.

다행히 우리 집 뒤는 살고 있는 사람이 없다.

농사 규모가 커지면서 경운기와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는 편리함을 찾아 다 떠나고 우리 집이 맨 끝 집이 된것이다.

덕분에 대충 입고 샤워장을 드나들어도 전혀 불편함이 없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서산에 해가 기울때까지 더위에 감금돼 있다 보면 여름날의 하루가 길게도 느껴진다.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을 전달해 주던 낡은 선풍기가 툴툴 거리며 힘들어 할 때 쯤 막걸리 한 병과 텃밭에서 따 온 참외와 토마토 한 개를 곁들여 하루를 마무리 하는 혼자만의 의식을 치른다.

아내는 더위를 피해 시내에 있는 아파트에서 여름날의 대부분을 보내고 가끔씩 혼자 할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주러 오기 때문이다.

아내의 이런 피서도 귀농 7년 만에 처음으로 주어졌다.

모시고 살던 장모님께서 석 달째 서울의 자식들 집을 순회 방문 중이기 때문에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아내의 행복한 휴가의 끝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날은 나의 다이어트가 끝나는 날이 될 것이다.

열대야가 며칠째 계속 되고 있다. 하루 종일 가마 솥 더위에서 지친 몸을 일으켜 밤하늘 구경에 나선다. 흰 고무신 위로 별빛이 쏟아져 내린다.

서쪽 하늘에 떠 있는 달님도 윙크하듯 실눈을 뜨고 농부와 눈을 맞추는 뜨거운 밤이다.

내일은 오늘 보다 더 뜨겁다는데..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