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뜯기 전에 다시 한 번…’ 정병욱 가옥도 살리고 망덕포구도 알리고
‘뜯기 전에 다시 한 번…’ 정병욱 가옥도 살리고 망덕포구도 알리고
  • 김영신 기자
  • 승인 2017.12.01 18:06
  • 호수 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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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김영신 취재기자

진월면사무소의 창고로 사용되고 있는 옛 진월면사무소를 두고‘철거’하자는 쪽으로 여론이 기울고 있는 가운데 70여 년의 시간을 간직한 건물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모든 사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흔적과 의미가 퇴색되고 허물어지기 마련이지만 물처럼 흘러온 시간의 흐름은 지울 수도 없고 거스를 수도 없다.

오랫동안 방치된 옛 진월면사무소를 주민들은‘보기 싫으니 뜯어버리자’고 하고, 광양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있는 일부 사람들은 존치를 희망하고 있다. 진월면 옛 사무소를 두고 존폐논란이 일게 된 건 진월면 소재지의 특색 있는 테마를 발굴, 경쟁력을 확보해 배후마을과 도시를 연결하는 거점공간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대규모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 될 주민 편의시설 공간 확보 여부에서 시작됐다.

어느 지역이나 오래된 공공건물을 뜯고 다시 짓기도 하고 또, 뜯지 않고 그대로 두어 활용도를 찾지 못한 채 애물단지로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자꾸만 남의 동네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다른 도시의 예를 들어보자.

가까운 순천시는 조곡동의 50년 된 농협 양곡창고를 외형은 그대로 두고 내부를 리모델링해서‘청춘창고’라는 이름의 청년 창업공간으로 만들었다. 순천역과 가까운 이 곳은 접근성이 좋아‘내일로’열차를 타고 기차여행을 다니러 온 전국의 많은 청춘들이‘방앗간’처럼 거쳐 간다.

일제강점기의 동양척식주식회사, 미군정청, 미문화원으로 사용되어온 부산의 근대역사문화관 건물도 마찬가지다. 건물을 뜯지 않고 역사적 의미를 살려 부산의 근대역사를 기념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진월면 옛 사무소는 순천의 양곡창고보다 더 많은 시간을 축적하고 있고 다른 지역의 포구에는 없는 특별한‘무엇’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망덕포구가 지척이고 이곳에서 윤동주 유고시집이 발견된 정병욱 가옥이 있다는 것과 태인동의 김 시식지와 더불어 조상들이 김 채취와 전어 잡이로 생업을 이어오던 광양 어업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원형은 사라지고 지금은 횟집으로 변한 해태조합과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의 모형인 판옥선을 만들었던 선소, 어영담 현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망덕포구 수문 등 많은 역사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태인도를 가려면 망덕포구에서 나룻배를 타야 했다고 하니 망덕포구는 태인도와 진월면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삶의 현장이었다.

옛 진월면사무소를‘그저 그런 평범한 건물이고, 100년이 됐느니 안됐느니, 문화재로 지정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를 따지기 전에 진월면의 역사문화를 보존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이와 함께 정병욱 가옥을 비롯한 망덕포구의 역사와 의미를 살려 섬진강 물줄기의 끝 망덕포구를 광양 여행의 낭만아이콘으로 만들어 가면 좋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먼저 해본다면 좋겠다.

문화재의 기준과 가치를 충족하지 못해 문화재 지정이 어렵고 이도 저도 여의치 않다면 일단은 市 기념물이라도 지정해두는 건 어떨까?

더구나 광양은 지금‘이제는 문화도시다!’를 외치며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에‘없는 것을 억지로 만들어 내려 하지 말고 있는 것을 찾아 그 의미를 살리고 가꿔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빠르게 급조 되는 싼 티 나는 문화를 양산하지 말고 오랜 시간이 간직한, 돈으로도 살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고급스러운 문화를 발굴하고 보존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표면상으로는 주민들의 의견이 철거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알려졌지만 일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망덕에서 오랫동안 살아 온 주민 A모 씨는“보수가 필요하다면 보수를 해서 진월면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작은 기념관으로 만들어 활용하는 방법도 있을텐데 굳이 뜯을 필요가 뭐가 있느냐?”며“소수의 의견이 주민 대다수의 뜻인 것처럼 왜곡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진월면의 한 청년은 “뜯고 안 뜯고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뜯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존치한다면 어떻게 활용해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진월면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에 문화재 발굴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진월면 옛 사무소는‘뜯기 전에 다시 한 번’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

벚꽃 만발한 봄날에, 정병욱 가옥에서 시작한 걸음이 진월면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진월면 옛 사무소를 거쳐 은빛물결 일렁이는 망덕포구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섬진강 휴게소까지 걸음을 이어간다면 낭만적인 포구기행의 코스가 만들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