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새소리 들리는 늦가을의 백운산, 반짝이는 남해 바다는‘보너스’
풍경소리·새소리 들리는 늦가을의 백운산, 반짝이는 남해 바다는‘보너스’
  • 이성훈
  • 승인 2017.11.17 17:34
  • 호수 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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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룡면 백운산‘하백운암’가는 길…울긋불긋 단풍 세상

이번 주‘길을 걷다’취재를 위해 옥룡 하백운암을 올라간 날이 지난 16일이었다. 15일 경주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수험생들은 이날 시험을 치렀을 것이다. 시험일이 연기돼 다소 아쉬운 수험생과 학부모도 있었을 테지만 수능보다 중요한 것이‘안전’이다.

해마다 수능일이 되면 춥다. 94년부터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바뀌었으니 수능을 도입한 지도 어느새 20년이 훌쩍 지났다. 학력고사를 치러본 사람들은 안다. 수능일이 춥다고 하나 학력고사 세대들이 경험했던 입시한파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학력고사는 보통 12월 20일 전후로 치렀는데 그 시기가 동지와 맞물린 까닭에 해마다 매우 추운 날씨 속에 시험을 치렀다. 매서운 날씨에다가 학력고사가 주는 긴장과 압박 속에 수험생들의 몸과 마음은 더욱더 추울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학력고사는‘입시한파’(入試寒波)였다.

지금이야 수험생들이 집과 가까운 학교에서 시험을 치렀지만 학력고사 시절에는 지원한 대학에서 예비소집을 하고 그 지역 초중학교 등에서 시험을 치렀기 때문에 승용차도 많지 않던 시절, 하루 전 고사장이 있는 도시로 떠나는 것이 다반사였다.

엄동설한에 몸도 마음도 꽁꽁 언데다 낯선 지역에서 시험을 치렀기에 수험생들이 느끼는 긴장감은 지금 수험생들보다 더 했을 것이다. 전기대, 후기대, 전문대 등 시험 날짜가 각각 달랐지만 ‘선지원 후시험’제도여서 대학도 한 곳밖에 지원하지 못하고 학과도 1지망과 2지망 순으로 지원하는 것이 전부였다.

당시에는 원서 마감 마지막 시간까지 얼마든지 지원학과를 바꿀 수 있었기에 일부 수험생들은 원서

를 잔뜩 사놓고 치열한 눈치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일부 과는 몇 십대 1은 보통이었으며 막판에 미달이거나 경쟁률이 낮은 과에 응시자들이 대거 몰리기도 했다.

삐삐도, 휴대폰도,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 수험생과 학부모는 어떻게 정보를 얻어 눈치작전을 펼쳤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수능일이라 그런지 하백운암 가는 도중 학력고사의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 몇 자 끄적거려 본다. 

옥룡면사무소를 지나 동동 마을 주변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신재 최산두 선생의 발자취가 남겨진 학사대 주변에서, 저 멀리 봉강에서 옥룡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에도 붉으스레 염색한 가을 산이 백운산 정상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진다. 촘촘히 녹색 푸름을 자랑하는 소나무들 사이에 유독 샛노란 은행나무들이 눈에 띈다.

백운산으로 가는 주 도로를 지나 용소 방향 샛길로 들어가면 하백운암 가는 길이 시작된다. 하백운암을 차로 가려면 운전에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외길에다 아스팔트가 아닌 콘크리트여서 바닥도 울퉁불퉁하며 길이 매우 구불구불하고 경사도 심해 조심해야 한다. 올라가는 내내 행여나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차가 없는지 조마조마했다. 평일이라 다행히 마주친 차량은 없고 뒤에서 흰색 승용차가 일정한 간격으로 따라왔다.

용소에서 하백운암까지 거리는 2.8km. 걸어서 올라오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린다. 걸어오는 사람들도 가끔 보이는데 딱딱한 콘크리트길이니 등산화 보다는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걷는 것이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처음으로 하백운암을 맞이한다. 법당인 대웅전과 산령각, 백운당이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 처마에는 초겨울 바람을 맞은 풍경소리가 유난히 깊게 울린다. 

하백운암은‘백운사’(白雲寺)로 불리는데 신라말 도선국사가 말년에 은거하다가 입적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1181년(명종 11)에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창건했다고 전해지지만 그 뒤 연혁은 남아 있는 기록이 전혀 없어 알 수 없다.

상백운암·중백운암·하백운암이 본래부터 한 사찰이었으며 가장 위쪽에 위치한 상백운암은 현재 인법당과 요사를 겸한 두 동이 있다. 중백운암은 현재 암자 터만 남아 있다.

하백운암 위로 새롭게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걸어본다. 20분 정도 천천히 걸어 올라가다 보면 도로 종점이고 주차장이다. 여기에서부터 상백운암은 등산을 해야 한다. 하백운암에서 백운산 정상까지는 2.2km니 한 시간 정도 산을 타면 상백운암을 지나 백운산 정상을 둘러볼 수 있다.

올라가면서 폐 속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신선하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니 가쁜 숨도 금방 안정된다. 뒤로 걸으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저 멀리 남해 바다가 햇볕에 반사돼 반짝거린다. 그 위로는 푸르디푸른 가을 하늘이 나무와 햇볕과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잎이 모두 떨어지면 겨울산은 황량하기만 하다. 그 허전함을 파란 하늘과 매서운 바람, 그리고 수북한 눈이 채워 주리라. 그게 겨울산의 매력이다. 

상백운암은 아껴뒀다 다음에 가기로 하고 도로 종점에서 풍경을 좀 더 감상한 뒤 하백운암으로 내려왔다. 백운산 깊은 곳, 새소리와 풍경소리만 고요히 들리는 하백운암을 한 바퀴 돌면서 이제 <길을 걷다>는 겨울 시즌을 준비하려고 한다. 용소 입구에는‘용문사’라는 절도 있으니 내려오는 길에 용문사에 들러보는 것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