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期엔 내가 없다.
雨期엔 내가 없다.
  • 광양뉴스
  • 승인 2017.08.18 18:29
  • 호수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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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박지선

여수 여천 출생

2003년 광주매일 신춘문예

2004년 동서커피 맥심상

2008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2010년 수필계 수필 당선

 

비가 쏟아지고 있다.

오랜 가뭄에 쩍쩍 갈라지던 논바닥이 블랙홀이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빗방울 빨려 들어간다.

 

하늘이 깜깜하다.

백일홍 꽃잎이 젖고 잎이 젖고

까칠한 보리 이삭이 젖는다.

선채로 싹이 튼 보리 낱알들

뿌리내릴 한 줌의 흙은 너무 멀다.

 

모든 것들 비에 젖어 들 때

나는 우산을 펼쳐든다.

밖으로 퉁겨 내던 빗방울

우산이 우산을 들이 받고

속옷까지 젖어 퉁퉁 부풀어 오른다.

 

비가 오는 날은 바람도 비 편이다.

모든 것은 그들끼리 닮아있고

나는 나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높새바람은 어디에 있는가.

내가 있던 자리엔 비바람에 젖은 모든 것들이 웅성거렸다.

 

오랜 가뭄 끝 우기엔 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