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효부’로 인정하는 그녀, 황길동‘최정엽’씨
모두가‘효부’로 인정하는 그녀, 황길동‘최정엽’씨
  • 김보라
  • 승인 2016.11.25 20:07
  • 호수 6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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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한 시대에‘긍정의 힘’을 배운다

15년 동안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시어머니를 수발했다. 지난 2월 시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그녀에겐 아직도 할 일이 많다.

허리 수술로 4년째 거동을 못하시는 시아버지를 위해 24시간 동안 옆에서 똥 기저귀 갈아내며 식사를 챙기고 목욕시키고 욕창이 생기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

시동생의 죽음으로 고아가 된 조카 3명의 뒷바라지와 전처 자식 둘, 친자식 둘까지 키워낸 아이만 7명이다. 비극적인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이야기라고? 아니다. 지역 내에서‘효부’로 칭송이 자자한 황길동에 사는‘최정엽’(52)씨의 사연이다.

지난 23일 오전 1시간 동안 그녀의 삶을 엿봤다. 취재하면서도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각박한 인생을 산 듯 했다. 한 단락의 글로 함축하기에는 너무도 고단한 20년간의 결혼생활, 하지만 그녀는 ‘긍정의 힘’을 잃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한 번의 실패로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그녀였지만 한 남자를 만나 용기를 갖고 다시금 새 가정을 꾸렸다.

전처 소생의 아이 2명을 친자식처럼 키웠다. 여기에 시동생의 죽음으로 고아가 된 조카 3명의 육아도 그녀의 몫이었다. 자연스레 친자식 2명은 뒷전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그녀는 마음 아파할 새도 없었다.

결혼한 지 5년째 되는 해 청천벽력 같은 시어머니의 치매 진단이 떨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고된 시집살이로 인해 눈물, 콧물 마를 날 없던 그녀였지만, 병에 걸린 시어머니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똥 기저귀 치우고 사방팔방 똥칠이 된 집안을 청소하는 것쯤은 예삿일이었다. 먹는 것에 집착이 심한 어머니는 흙이며 풀이며 심지어는 휴대폰을 부숴, 그 부품까지 삼켜버렸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24시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갑상선 암 판정을 받고 수술했음에도 2주만에 집에 돌아와야 했던 그녀는 40kg밖에 되지 않는 체중으로 대식구들을 건사하느라 정작 본인은 빈혈 등에 시달리며 길바닥에 쓰러지기를 밥먹듯 했다. 몸이 고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강성했던 시어머니는 증상이 악화될수록 그 분노를 며느리에게 표출했다. 공주, 여왕 대접을 하지 않으면 밥상을 엎어버리는 것은 물론, 머릿채를 잡거나 어깻죽지를 발로 차는 등 폭력이 날아왔다.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을 먹는 것은 일상이었으며 아침 눈을 떠서부터 잠들 때까지‘노비’와 같은 하루하루를 살았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친자식들을 데리고 잠시 집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두 번째 결혼마저 실패할 수 없다’는 생각과 나 아니면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과 생때같은 조카들이 눈에 밟혀 이내 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가장 그녀의 마음을 짓누른 것은 가장 어린 막내 아들, 그녀는 지금은 중학교 3학년이 된 아들 덕분에 이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살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지난 2월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조카들은 이제 어느 정도 장성해 직장인, 대학생, 고등학생이 되었다.

이제 그녀에게도 비로소 자기만의 ‘시간’이란 게 생겼다.‘시간’이라고 해봤자 결혼 20년만에 처음으로 하는 화장하는 시간, 고된 세월을 견뎌내느라 여기 저기 생긴 골병의 흔적들을 치료하느라 병원에 가는 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녀는 이조차도 너무 감사하다고 한다.

욕창이 생겨도 병원에 가길 거부하시는 시아버지로 인해 아직도 그녀의‘간병’업무는 현재 진행중이지만, 그녀는 “그래도 시아버지가 오래오래 곁에서 대가족의 중심축이 되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은 여생, 더 바랄 것 없이 요즘처럼 가족들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최정엽씨, 그녀를 오랜 기간 지켜본 동네주민들의 추천으로 지난 9월 광양시에서 주는‘효부상’도 수상했다.

주어진 삶을 살았을 뿐인데‘효부상’은 너무 과분하다며 머쓱해하는 최정엽씨, 이제부터 그녀의 인생의 주인공이 그녀가 되기를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