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르네상스 시대, 미술관이 첫발이다!<11> 중세도시 그라츠에‘친근한 외계인’찾아와
문예르네상스 시대, 미술관이 첫발이다!<11> 중세도시 그라츠에‘친근한 외계인’찾아와
  • 김보라
  • 승인 2016.11.18 20:33
  • 호수 68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DDP<동대문 디자인플라자>, 트라이볼 뛰어넘는 디자인 자리매김 하길
DDP(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사진제공 = DDP>

쇠락 철강산업 대체할 광양의 미래 공간 되어야

  이라크계 여성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2016년 별세)가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설립 초기에 흉물 논란으로 말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생전 보도 못한 디자인이었다. 무슨 우주선이 내려앉은 건물처럼 보였다.

  주변의 건물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가장 큰 비판은‘역사성을 무시한 건물’이라는 것이다. DDP를 짓기 위해 80년간‘한국 스포츠의 메카’였던 동대문운동장을 허물었다. 근처에 한양도성 성곽, 하도감 터 등 유적들이 발굴되어 한국의 전통문화와 디자인을 가미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 같은 역사성과 지역의 특수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었다. 처마에서 아트홀 지붕까지 펼쳐지는 옥상정원도, 한국미가 아닌 자하 하디드의 고향인 이라크를 떠올리게 한다고 비판했다. 이 옥상정원은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도 유사한 형태가 있다.

  이런 논란에도 우주선을 닮은 세계 최대 규모의 비정형 건물인 DDP는 외국인 관광객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야경은 마치 우주선이 내려 앉아 창문으로 보이는 불빛과 같다. 현재는 하루 평균 2만2천여 명의 방문객이 DDP를 찾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에게는 촬영 명소로 환영받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지난해‘한 해 동안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명소’로 선정하기도 했다.

  인천 송도의 트라이볼(Tri-Bowl)은 또 어떠한가. DDP처럼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국내에서 쉽게 지을만한 디자인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건축공간의 일반적 이해를 뒤집어 놓은 3층 규모의 복합문화공간 트라이볼은 마치 오목한 그릇 3개를 연결시켜 놓은 듯한 형상이다. 건물 외벽에 형형색색의 별빛과 같은 모습을 비추는 듯한 조명으로 새로운 야경도 만들고 있다.

 

쿤스트하우스 그라츠

지역간 불화 해소 도시 위상 높여

  미술관 건축은 어느 건축 분야보다 건축가 자신의 미학과 철학을 살릴 여지가 많은 편이다. 건축가의 상상력과 선진적인 시대정신을 오롯이 담은 독창적인 미술관들이 현대 건축 순례지에 포함되는 이유다.

  오스트리아의 제2도시 그라츠(Graz)는 199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고 2003년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된 도시이다. 즉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이다.

  그런데 생뚱맞게 붉은 지붕을 가진 낮은 건물로 이루어진 도심 한 복판에 커다란 빨판을 가진 외계생명체가 머무른 것 같다. 쿤스트하우스 그라츠(Kunsthaus Graz)는 이처럼 형태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독특한 외형을 자랑한다.

쿤스트하우스 그라츠

  역사 1000년이 넘는 중세도시에 들어선 외계 생명체 같은 이 파격적인 미술관이 세계 건축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꼭 가 봐야 할 건축물로 꼽히는 이유는 외형 때문만은 아니다.

  미술관이 문화와 예술이 그 사회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해묵은 과제인 동서 간 문화적 이질감과 사회적 불협화음을 말끔히 해소시키면서 도시의 문화적 위상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라츠는 빈에서 남서쪽으로 약 150㎞ 떨어진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신기한 생명체 같은 독특한 외관을 가진 쿤스트하우스 그라츠는 문어의 빨판처럼 촉수를 내민 지붕의 700개 형광등이 시시각각 다른 패턴으로 점멸해 꿈틀거리는 연체동물을 상상하게 한다. 마치 서울의 DDP와 유사한 느낌을 갖게 한다.

  함혜리(2015)는 <미술관의 탄생>에서 이를 천년 역사의 중세도시에 살포시 내려앉은‘친근한 외계인’이라고 표현했다.

  그라츠는 고색창연한 옛 성채와 성당, 붉은 지붕의 건축물과 좁은 골목길이 도시의 풍경을 이룬다. 도시의 젖줄인 무어 강은 여름엔 래프팅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수량이 풍부하다. 이 아름다운 강의 양쪽으로 전혀 다른 두 개의 도시 풍경이 펼쳐진다.

  즉 동쪽 지역은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한 구시가지로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다양한 시대별 건축물들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반면 서쪽에는 기차역, 공장, 양조장, 제련소 등의 산업시설에 정신병원과 감옥, 홍등가 등이 자리했다.

  그라츠 시 정부에서는 이러한 두 지역간의 불화를 줄이기 위해 빈곤층 밀집 지역인 서쪽 지역을 예술로 재개발하기 위한‘아트존’으로 정했다. 2004년 9월 약 5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쿤스트하우스를 지었다. 처음 이 건물을 짓기 시작할 때 많은 시민들이 도시 미관을 해친다고 반대했다.

  공공기능을 가진 건물에 어디까지 작가의 상상력을 허용해야 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설계안을 놓고 실시한 찬반투표에서 무려 80%가 반대했을 정도였다. 지극히 보수적이고 고풍스러운 중세도시에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법한 외형의 미술관이 들어선다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라츠 시민들이 이 괴상한 건물을‘친근한 외계인’으로 받아들인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쿤스트하우스가 완공된 후 누구나 가보고 싶은 관광명소가 되었다.

  외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덩달아 미술관 입장객도 많아 수입도 만만치 않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 주변에는 카페, 재즈 바, 영화관, 콘서트 홀, 쇼핑센터 등이 들어섰고 그라츠 문화의 새로운 광장이 되었다.

 

성공적인 공공예술로서의 건축 모델 꼽혀

  그라츠시의 현대미술관 건립은 그라츠시의 숙원 사업이었다. 1980년대에 현대미술관 건립 계획을 수립해 두 차례 현상설계를 하고 당선작까지 뽑아 놓은 상태에서 정권 교체와 시민사회의 반대로 무산됐던 터였다.

  무산된 두 번의 계획은 무어강 동쪽에 현대미술관을 짓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동서 간 격차가 심한데 현대미술관마저 동쪽에 짓는다는 계획은 공감을 얻어내기 어려웠다.

  세 번째 시도를 하던 중 마침 그라츠가 2003년 유럽문화도시로 선정되면서 그라츠시의 미술관 건립 계획은 탄력을 받았다. 그동안 문화예술적으로 소외된 무어강 서쪽에 쿤스트하우스를 유치해 ‘예술을 통한 사회의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도 정치·사회적으로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영국인 건축가 피터 쿡(Peter Cook)과 함께 참여한 프랑스 건축가 콜린 푸르니에(Colin Fournier)는 무어강을 사이에 두고 이질적으로 발전해온 도시의 역사적 설정과 그들의 혁신적인 디자인 언어를 인상적으로 합성해 건물을 완성한 것이다. 건물은 한 마디로 파격적이다. 그럼에도 위압적이거나 위화감을 주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다.

  4층짜리 건물은 유선형 모양에 청색이 감도는 아크릴 외장으로 지어졌다. 지붕 위에는 문어 빨판처럼 생긴 16개 촉수를 달았다. 이 촉수 가운데 9개는 채광창 역할을 한다. 930개의 원형 형광전구는 미디어아티스트를 위한 거대한 캔버스 역할도 한다. 밤마다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미술관을 바라보며 시민들은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한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매시 정각 10분 전에는 5분간 초저음의 진동음도 낸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건물 자체가 움직이는 것이다. 현재 1층은 커피숍, 2~3층은 미술관으로 사용한다.

  소장품 없이 다양한 현대미술의 실험장으로 자유롭게 운영되는 쿤스트하우스 그라츠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탈피한 새로운 형태의 미술관이다. 건물 상층부에도‘바늘’이라고 부르는 기다란 전망대가 설치돼 강 건너 맞은편의 도시와 소통하도록 했다. 성공적인 공공예술로서의 건축은 바로 이런 것이다. 세계의 건축명작으로 꼽힌다.

  이제 우리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건축물 하나가 도시의 미래를 담보한 사례는 상당히 찾아볼 수 있다. 광양에 세워지는 전남도립미술관도 이제 쇠락기에 접어드는 철강산업을 대체할만한 공간이 되길 바란다.

 정인서 광주문화도시계획 상임대표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