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어촌자본주의』‘바다에서 희망을 찾다’
새 책『어촌자본주의』‘바다에서 희망을 찾다’
  • 이성훈
  • 승인 2016.08.30 17:52
  • 호수 6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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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대안은 ‘인간과 자연’ 공조

해양자원고갈, 환경오염, 어획량 감소…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근해(近海) 문제의 해결책이자
새로운 학술용어로 확립된 ‘어촌’은 과연 무엇인가?

“무분별한 개발과 무관심으로 한계에 다다른 바다, 더 이상 인류의 보고(寶庫)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일본의 어촌마을에서 시작된 작은 움직임에서 인류와 바다의 공생과 지속 발전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래의 희망과 무한한 가치를 지닌 바다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 그 해답은 ‘어촌’에 있다.” _장만 해양환경관리공단 이사장

장만 해양환경관리공단 이사장의 말처럼, 인류에게 있어 바다는 보고(寶庫)였지만 자본주의시대를 거치며 바다는 인간에 의해 개발의 대상으로 전락했고 더 이상 공존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바다는 한계에 다다르고 환경오염과 해양자원고갈 등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막다른 길에서 이러한 현상을 타개할 작은 노력이 일본의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어촌(里海, SATOUMI)이라는 개념은 일본 세토 내해(???海)에서 시작되었다. 세토 내해는 일본 혼슈섬과 시코쿠섬, 규슈섬 사이의 좁은 바다를 말한다. ‘앞바다’의 의미를 갖고 있는 ‘어촌’은 ‘인공적인 관리를 통해서 생물다양성과 생산성이 향상된 연안 해역’으로 정의된다. 또한 이러한 어촌의 개념은 이미 학술용어로 확립되었고, 해양자원고갈이나 오염의 문제를 안고 있는 전 세계 근해(近海)의 해결책이 되고 있다.

2015년 7월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里山資本主義)』(동아시아)로 국내에 소개된 ‘산촌자본주의(里山資本主義)’. ‘예전에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휴면자산을 재이용함으로써 경제재생과 공동체의 부활에 성공하는 현상’을 말하는 산촌자본주의의 개념을 포함하면서도 보다 심화되고 확대된 개념이 바로 ‘어촌자본주의’이다.
인간에게 유용한 미사용 자원을 활용하는 단계에 머물지 않고, 자연과 대화하고 적절하게 관리해서 본연의 생명의 순환을 바로잡고 효율성을 높이는 ‘어촌자본주의’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완강히 거부반응 보이던 구미 학자들
‘어촌’에 주목...상식의 큰 전환점 맞이해


1997년 8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전 세계 내해(內海) 연구자들이 한곳에 모이는 국제회의가 열렸다. 한 일본 연구자가 사람들로부터 야유를 받고 있다. 규슈(九州)대학의 야나기 데쓰오(柳哲雄) 교수는 어촌(SATOUMI)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해외 학회에 이날 처음 소개했다. 어촌이 ‘전 세계 내해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구미의 학자들은 이 개념을 완강히 거부했다. 왜 그랬을까? 하지만 10년 뒤 같은 학회에서는 오히려 야나기 교수에게 가르침을 원하는 외국인 연구자들이 모여들었다.

구미의 연구자들이 격렬하게 거부반응을 보인 이유는 세상 만물 모두에 신(神)이 깃들어 있다는 사상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산, 바다, 물고기, 나무, 풀 등 ‘신’은 유일한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상이 ‘어촌’의 기본이 되는 정신인데, 유럽의 연구자들은 이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거부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에 야나기 교수는 어촌에 관한 논문을 1998년에 발표하고, 어촌을 ‘인공적인 관리를 통해서 생물다양성과 생산성이 향상된 연안 해역’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2006년에 『어촌론(里海論)』이라는 책도 출간했다.

일부 생태학자들로부터, 연안 해역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즉 인공적으로 관리를 하지 않는 것이 생물다양성을 높인다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실제로 바다에서 실험한 결과를 바탕으로, 해양생물의 새로운 서식환경을 정비하는 등의 인공적인 관리를 통해 바다의 생물다양성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즉, 인간이 관여해서 바다의 순환을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생산성이 오히려 높아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파괴된 자연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인간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라고 생각해온 세계의 상식은 큰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일본 내해에서 시작된 ‘어촌’ 운동, 전 세계로 뻗어

‘어촌’은 지중해를 시작으로 미국, 인도네시아, 타이, 중국 등의 내해와 만(灣)에서 인간생활에 근접한 바다의 해결책이 되기 시작했다. 미국 동부 워싱턴 D.C의 포토맥(Potomac)강이 흘러드는 체서피크만(Chesapeakea灣)은 유입되는 강의 상류에 있는 목장의 가축 배설물 등 부영양화물질이 흘러들어 바다의 조개가 거의 사라졌었다. 그러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굴 기르기를 계속하여(굴은 정수능력이 있다), 오염된 바다를 깨끗하게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자바(Java)섬에서 맹그로브(mangrove) 밀림을 개척해서 만든 거대 새우양식연못이 오염되고 새우가 대량으로 죽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잘라버렸던 맹그로브를 다시 심고 물속에 번식했던 해초도 늘렸다(맹그로브는 굴처럼 정수능력을 갖고 있다). 양식의 효율성만 추구하며 오직 새우만 양식하던 방식을 바꾸고, 포식자인 다른 물고기들을 함께 길렀는데도 새우만 길렀을 때보다 3배나 더 새우가 자라게 되었다. 이 어촌 성공체험은 인도네시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또한 프랑스의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도 어촌은 어부들과 환경단체의 심각한 대립을 해결해줄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했다.

자본주의의 막다른 길에 등장한 ‘어촌자본주의’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사는 바다와 미래를 만든다

신간 『어촌자본주의(원제: 里海資本論)』는 2014년 3월 23일 일본 NHK에서 방송된 NHK 스페셜 [어촌 SATOUMI 세토 내해]라는 방송을 책으로 옮긴 것이다. 책의 저자 중 이노우에 교스케는 NHK 엔터프라이즈의 책임프로듀서로, 2015년 국내에서 출간된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일본의 세토 내해에서 시작된 바다를 살리는 모든 활동을 뜻하는 ‘어촌’과 그것을 토대로 자본주의의 막다른 길에 다다른 현재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한 ‘어촌자본주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생생한 취재과정을 책에 그대로 담아내 흡사 방송프로그램을 직접 눈으로 보는 듯하다.

『어촌자본주의』에서는 단순히 오염된 바다를 살리는 이야기만 하고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의 한계에 다다른 현재,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바다는 어부들이나 해양학자들만의 관심 대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바다는 결국 자연이고, 인간은 그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노우에 교스케, NHK 어촌 취재팀 지음/ 김영주 옮김 / 동아시아 / 250쪽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