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립미술관이 건립되면 소중한 그림을 기증하고 싶습니다.”
광양출신으로 1919년 4월 1일 광양읍 우산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한 김상후 의사의 후손들이 100년이 넘은 매화 그림을 보관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옥룡면에 살고 있는 김형록 씨가 그 주인공인데 김 씨의 집안에는 금성 정대유 선생이 그린 매화 그림‘효명창변 작약희’(曉明窓邊 雀躍戱)를 소장하고 있다. 화제의 뜻은‘새벽이 밝아오니 창가의 참새는 뛰고 즐겁게 논다’이다.
이 그림은 1910년 서울 필동에서 위창 오세창, 금성 정대유, 성재 김태석 및 진사 황병욱 등 많은 애국인사들이 참석, 시국을 논하는 자리에서 금성 정대유 선생이 매화 그림을 그려 김상후 의사에게 선물로 건넨 것이다. 김상후 의사는 1870년 옥룡면 상평출신으로 자는 용여(用汝). 호는 금호(錦湖)이다.
본관은 금녕으로 1893년 6월 순릉참봉(順陵參奉)을 초임으로 통공대부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호군 오위장 겸 호군 오위장을 차례로 역임했다.
1919년 4월 1일 광양읍 빙고등(우산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수백장의 태극기를 군중들에게 나눠주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일제에 체포됐다. 같은 해 4월 26일 광주지법 순천지청에서 징역 8월형을 언도받고 복역 중 일제의 갖은 악행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출감했다.
정부는 김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92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으며 광양향교 조산자락에‘5의사 삼일운동 기념비’(1996년 건립)에 김상후 의사의 독립운동 내용을 기리고 있다.
그림을 그린 정대유 선생은 괴석(怪石)과 난죽(蘭竹) 그림으로 유명했던 학교(學敎)의 아들이며, 작은 아버지 학수(學秀)도 화가였다. 외부주사와 통상국장을 거쳐 1906년 농상공부 상무국장을 역임했다. 글씨에서는 예서와 행서에 능하며 그림에서는 간결한 필치에 맑은 담채가 곁들여진 매화와 괴석을 즐겨 그렸다.
김상후 의사는 정대유 선생으로부터 매화 그림을 받은 후‘견매화’(見梅花)라는 시를 남겼다.
시를 살펴보면‘정월 달 동산엔 말없이 눈이 쌓였는데/ 그 누가 구슬 같은 매화를 보내 왔는고/ 한 잔 술에 봄 소식 물으니/ 아름다운 사람보지 않고 매화를 보네.’이다. 그림은 매화나무에 참새 몇 마리가 앉아 한가로이 노닐며 따뜻한 봄을 만끽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했다.
의사의 후손 김형록 씨는“광양은 해마다 3월이면 매화의 향연으로 봄소식을 알리고 있다”면서“매화의 고장인 광양에 선조께서 소장하셨던 귀중한 그림을 후손이 간직하고 있어서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씨는“매년 매화축제를 할 때마다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 이 그림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게 된다”며“그림을 보면서 제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광양시청에서 근무하며 구봉산전망대 관리를 맡고 있는 김형록 씨는 “광양이 이제 곧 도립미술관을 건립하는데 행여 이 그림이 도움이 된다면 기증할 계획”이라며“미술관을 찾는 시민들뿐만 아니라 미술관을 찾는 관광객들이 그림을 통해 광양의 매화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나라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