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51> 봉사에도 자격증이 있다? 없다?
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51> 봉사에도 자격증이 있다? 없다?
  • 광양뉴스
  • 승인 2015.07.06 09:15
  • 호수 6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광석ㆍ권치숙 부부 이야기

최광석씨는‘회장님’직함이 대여섯 개이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봉사단체에서 세워준‘회장님’이다. 봉사 자격증(?) 때문이다. 바늘 가는 데 실 간다고 했던가? 그 직함 옆에는 또 부인 권치숙님이 늘 함께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남다른 봉사활동에 열정을 쏟고 있는 최광석씨 부부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번 최광석씨 부부를 취재하는 과정이 다소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취재 내용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만나기가 어려웠다. 회사 근무 이외에도 각종 봉사활동 현장에 있거나 혹은 시골집에서 농사일을 돕고 있었다. 직접 얼굴 맞대고 취재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여 몇 가지 질의사항을 작성하여 서로 주고받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봉사를 위해 자격증을 따다

최광석씨가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사뭇 인간적이다.
“시작하게 된 동기는 고향에 혼자 계신 어머니 때문이었어요. 가끔 안부 전화할 때마다 야~야~ 밭에 갔다 와 보니 누군가가 와서 집안 청소도 해놓고 반찬도 만들어 놓고 먹을 것도 갖다 놨더라 하시는 거예요. 자식인 나조차 돌봐드리지도 못하고 있는데 여간 고마운 일이었지요. 나중에 알아보니 지역에 있는 기업체 봉사단에서 주기적으로 도와주고 있었어요.”

그래서 봉사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던 중 부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단다.
“봉사활동은 집사람은 먼저 하고 있었습니다. 각종 자격증과 수료증으로 재능기부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숲해설사, 문화해설사, 아이돌보미, 구연동화가, 발 맛사지사, 노인돌보미, 풍선아트 등 다양한 봉사였어요. 저는 처음에는 그냥 차량 운행이나 좀 해주고, 가끔 힘쓰는 일은 도와주고 그랬지요.”
그럭저럭 머뭇거리다가 한 두 차례 봉사에 참가해 보니,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어머님 생각도 나고 해서 주변 봉사단에 가입하여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일단 시작해 놓고 보니 욕심이 생겼다고나 할까. 현재 최광석씨와 함께하는 봉사자들은 모두가 봉사 전문가들이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2005년 4월에 광양시 여성문화센터에서 운영하는 3개월 코스 도배기능사반에서 도배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지난 2014년 7월에‘광양제철소 도배전문봉사단’이라는 봉사단체까지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다.

2015년 6월까지 수혜가정 24호점과 장애인시설, 무료급식소, 통합센터 기타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 곳을 막론하고 도배봉사를 하고 있다. 이건 단순히 남을 돕자는 봉사차원으로 해석할 일이 아니다.

자아실현과 자존감 같은 고차원의 정신적인 가치로까지 승화되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 정도면 봉사 전문가라는 칭호가 마땅하지 아닐까?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회장님 직함

최광석씨 부부의 봉사활동 영역을 살펴보면 이건 전 방위적이다.
2000년부터 교도소 제소자에게‘편지로 여는 세상’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편지쓰기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 2005년에“나눔이 부부봉사단”을 결성하여 지금까지 단장을 맡아 오고 있다.

노인정 대청소 및 다과회, 이ㆍ미용봉사, 반찬서비스, 청소년 쉼터 방문, 결연 아이들 방문, 김장 나눔, 새터민 방문, 어르신들 야외활동 등 단장으로서 그 책임을 다하고 있다.

2008년부터 여성건강가족부 소속으로 광양시 YMCA위탁 운영되고 있는 광양시 청소년 유해환경감시단활동을 하고 있다. 여기서도 팀장’을 맡아 지역 유흥주점이나 업소에 청소년들이 출입을 선도하고 있다. PC방은 물론 노래방은 10시 이후에 출입하지 않도록 계몽활동을 하고 있고, 우범지역 단속을 나가고 있다.

2010년부터‘광양제철소 영농학습동호회(에코팜)’에서‘포스코 영농사랑 회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퇴직 후 귀촌 귀농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사전교육으로 친환경 농사법을 전문가들을 통해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함께 실습하며 생산되는  수확물은 전량 불우이웃이나 관련 시설에 부식용으로 무상분배하고 있다.

2014년 7월‘포스코 1%나눔재단’이 설립되면서, 광양제철소에서도 실질적으로 지역민들에게 재능기부를 할 수 있는 테마를 찾아보자 해서 만들어진 봉사단체가“광양제철소 도배 전문봉사단” 이다.

7월에 퀵 오프식해서 12명이 3개월간 전문 강사에게 교육을 받아서 전원 도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재 22명이 활동 중인데 한 달 평균 2~3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수혜 가정이 24호점까지 진행되었다. 역시 여기서도“광양제철소 도배전문봉사단”단장을 맡고 있다.

2015년 2월 광양시 새마을회“직ㆍ공장새마을운동 광양시협의회”에서도 회장을 맡고 있다. 광양시 12개 읍면동 새마을 가족들과 함께 각종 봉사활동으로 시골 농촌 일손 돕기, 다문화 결혼식 올려주기, 다문화 고향 방문 주선하기, 시골 집수리하기, 장애인 시설 방문하기, 반찬 서비스, 각종캠페인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거 저거 주워 헤아리니‘회장님’ 직함이 대여섯이다. 급여도 없고 대우도 없는 오히려 일만 잔뜩 짊어지는 일꾼 회장직이다. 최광석씨의 봉사활동은 집안 청소나 해주고, 긴요한 생필품을 챙겨주고 금전적인 지원을 하는 그런 활동이 아니다. 어느 봉사와는 달리 고된 육체적 노동을 수반하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봉사다.

몸이 열 개라도

최광석씨는 광양제철소에 근무하는 회사원이다. 1991년 제선부 원료공장에 발령받아 지금까지 23년 동안 제선부에서만 근무하고 있다. 2006년에는 포스코 광양제철소 제안왕(제안 최고상)을 했으며, 2006~2007년 부서 제안왕, 특허왕으로 제철소장상을 수상하여 해외 체험연수를 다녀왔다. 2007년부터 포스코 전문분과위위원(Techno Expert)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내외에 우수한 핵심기술을 회사 내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을 발굴하여 학술토론 및 전문부서에 자문을 구하고 있다. 또한 원료공장 직원들이 제안, 특허 작성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08년에는 일반직원으로써 최초 QSS(설비개선리더)활동에 참여 2과제를 수행을 하여 GB인증을 받고 광양제철소 QSS명소 1호점으로 포스코 사장상을 수상하였다.

“포스코 기능직으로 입사하여 최고의 명예상인 제안왕을 하고 나서  회사에서 주어진 많은 혜택을 누렸습니다. 발상의 섬 제주도 연수, 해외체험 연수 2회, 국내 각종 핵심기술 세미나를 다녀 올수 있었고, 각종 큰상들을 많이 받아서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회사에서 인정해주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해야 할 일이 남다르게 많다. 일상적인 업무 이외에도 많은 제안과 특허를 얻기 위해 고뇌해야 하고, 더불어 자문위원 역할까지 2중 3중의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이처럼 봉사활동을 제2의 직업처럼 확고한 신념과 공력을 쏟는다는 열정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안타까움은 언제 어디서고

“내 재주를 다른 사람들에게 재능기부를 할 수 있다는 게 행복입니다. 비록 내 몸은 힘들고 고단해도 대상 수혜 가정과 수혜처에서는 엄두도 못 낼 큰 일들을 해결 해줌으로써 행복한 모습을 볼 때마다 피곤했던 하루가 싹 달아나는 느낌이 참 좋습니다.”

봉사활동 자체만으로는 그에게 큼 행복을 안겨주고 있지만, 봉사활동으로 인해 사회 어두운 구석을 참 많이도 보게 되었다. 자식이 있어도 경제적으로 보탬을 못 받고 홀로 계시는 어르신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눈으로 보고 올 때 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때도 많았다.

“수혜대상가정이 아니라고 기관에서 몰라라 하지 말고, 현장 가정 방문을 통해서 현재 실상을 파악해서 생필품이나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분이 의외로 많습니다.”

자식도 있고 생활여건도 괜찮은데 수혜가정으로 등록되어 복지혜택을 누리고 있는 대상 가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참 난감하기도 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누적 관리해서 형평성에 맡도록 조치가 필요할 것 같더라구요. 대상가정으로 등록해서 복지기관에서 이중으로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멀쩡한 젊은 사람이 자립하려고 하지도 않고 기관에서 주는 혜택들만 바라보고 손만 벌리고 다니는 꼴불견 대상가정도 있더라구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추적관리 같은 엄격하고 철저한 행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진리가 봉사하다

80평생 고향에서 농사만 짓던 어머님이 몇 해 전에 고향을 떠나 이곳 전라도 광양으로 오셔서 자식들과 함께 지내고 계신다.

“건강이 안 좋으신데 더 이상 아프지 마시고, 지금처럼 친구도 만나고 노인대학도 다니시고, 뒤늦게 한글도 깨우쳤으니 세상구경 많이 하시면서 인생 즐겁게 마무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소박한 소망이지만 모친에 대한 애틋한 정이 듬뿍 담겨 있어 듣는이의 마음마저 흔들렸다.
“1남 1녀입니다. 큰애는 식품영양학과에서 자격증을 취득해서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작은애 또한 문과에서 사회학을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으며 역사와 사회 전반적으로 지식이 풍부해서 각종 대회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이들 모두 광양제철초 관악부 출신으로 악기를 잘 다룬단다. 지금 생각하니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단다. 어른이 되어서도 악기 하나 쯤 다룰 수 있는 재능을 갖게 된 것은 그만큼 여유로운 삶이 될 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녀들이 자랑스럽단다.

“부모님이 계셨기에 내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모님 공경하고 자식들에게 앞날을 열어 주는 게 또한 현재 내가 해야 할 일인 거 같습니다.”

그렇구나! 최광석씨 부부가 열정을 쏟는 봉사의 시작과 끝은 여기에 있었구나. 비우면 차게 되고, 차면 넘치게 되는 인과는 만고의 진리이다.

봉사 활동이 오히려 일상생활이 될 만큼 베풂으로 비우고 채워온 부부의 공덕이 자녀들에게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부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진리가 봉사하지 않았을까?

박행신 광양문화연구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