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47> 크나큰 감동, 그 사랑나눔
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47> 크나큰 감동, 그 사랑나눔
  • 광양뉴스
  • 승인 2015.05.29 21:00
  • 호수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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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표 광양시사랑나눔복지재단 이사장

 

문승표 사랑나눔복지재단 이사장과 인터뷰를 하기 전에 기초적인 자료를 조사하고자 인터넷 검색창을 뒤적였다.

그랬더니‘주식회사 원창 대표’역할보다는‘사랑나눔복지재단 이사장’역할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곳도 복지재단 사무실이었다. 오전에 회사 일 잠깐 보고 곧바로 왔으며, 오후에도 복지재단 일과 관련하여 더 많은 일정이 잡혀 있단다. 그만큼 개인적인 일보다는 공공적인 사랑나눔복지재단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랑나눔 행사를 하다보면 때때로 감격에 겨워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많습니다. 지금의 나는 사실 그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지요.”

‘사랑나눔복지재단’은 지난 2008년에 복지 사각지대 서민들에게 내실 있는 맞춤형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자는 목적으로 광양시 조례로 설립한 비영리 공익법인이다.“설립 당시 지역 어른들이 내가 이사장직을 맡아야 한다고 추대했지요. 마지못해 수락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네요.”현재는 재단 직원만 해도 50여명이 넘는 규모로 확대되었다.

광양시 출연금 20억원을 종잣돈 삼아 목표를 50억으로 잡았는데 벌써 42억여 원이 출연되었다. 복지재단은 한 사람이 많은 돈을 내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동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매년 2만5000여 명이 참여하여 현재까지 15만여 명에 이른다. 이렇게 모아진 기금으로 기획사업, 틈새가정 지원사업, 저소득가정 지원사업, 기타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랑나눔복지재단 후원 방법은 다양하다. 방문전달(현금), CMS, 자동이체, 계좌이체, 물품후원 등 본인에게 맞는 방법으로 후원하면 된다.

 

사업가로서의 혜안

 “내가 고향에 머물러 사업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아픈 다리 때문이었지요.” 3살 무렵 다리를 크게 다쳤다. 12회 걸쳐 수술해야만 했고, 10여년의 병원생활을 해야만 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제풀에 지쳐 넘어질 만한 일이었다. 그런 고난 속에서도 순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대학교 약학대학를 진학하여 청운의 꿈을 품었지만, 학교 계단 오르내리는 일이 너무나 버거워 끝내 학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귀향한 후 광양읍 5일장에서 사업을 하시는 부친을 도우면서 눌러 앉은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5일장에서 일하다 보니 상권이라든가 물류의 흐름 등 전반적인 광양의 경제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광양 상권은 인근 순천 상권에 예속되다 싶을 정도로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다.“순천 상권으로부터 벗어나자는 차원에서 1972년 20여명의 상공인들을 모아‘광양상업회’라는 모임을 만들었어요. 제일 먼저 시작한 사업이 ‘우리고장 물건 사 쓰기’운동이었어요. 현재‘광양상공회의소’의 전초라고나 할까 그런 모임이었지요.”

1975년 유통업법이 제정되었다. 슈퍼마켓이나 백화점 등을 열 수 있는 법이었다. 그때 시장 안에서만 하던 사업을 시장 밖으로 이끌어냈다. 전남에서는 최초이자 가장 큰 250평짜리‘광양슈퍼마켓’을 열었다. 남다른 혜안이었다. 하지만 사정에 의해 1985년에 문을 닫게 되었다. 그 후에도 여러 가지 사업을 진행하다가 2005년에‘주식회사 원창’을 세웠다.

문 이사장의 회사 경영 철학은‘정직·성실·신뢰’이다. 특히‘신뢰’는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에 가깝다고 한다. 그리고‘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이 곧 회사의 발전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매월 회사원 5명을 선발하여 일정액의 보상금을 주어 가족이 함께 외식을 하도록 하는‘부부 사랑하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매년 종합검진은 물론이고 각종 예방접종도 실시하고 있다.

자녀들의 인성교육 차원에서 매년 5월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학생들을 대상으로 순천 KBS방송국과 공동으로‘감사 손편지 쓰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입상자는 ㈜원창이 주최하는  낭송의 자리에 초대하여 시상식을 거행하고, 직접 편지를 읽는다. 이 대회가 의외로 호응이 좋아 내년에는 광양교육지원청과 공동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개인 사업장까지도 사랑나눔을 끌어들인 것이다.

 

고향 사랑 모임의 구심점에서

 문승표 이사장은 광양읍 인동리가 고향이다. 지금까지 잠깐 다니던 대학시절을 제외하고는 거의 고향에서 지냈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고향에 대한 애착이 매우 크다. 이미 오래전부터 고향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모임을 만들어 그 구심점에서 큰 역할을 해 왔다.

앞에서 언급하였던‘광양상업회’이전에도 1970년에‘광양JC’창립 발기인으로서 참여했고, 후일에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광양지역 순천고등학교 동문회를 재창립하였다.

2005년도에는‘주식회사 원창’을 설립하여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포스코 광양제철소 외주사협회 부회장을 맡아 그 임무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또한 검찰청과 연계하여 밝은 사회 만들기와 청소년 범죄 예방 활동을 전개하는‘법사랑’ 모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1983년도 김대중 대통령 시절 우리 지역에‘민주평화통일협의회’를 창립하는데 주된 역할을 했고, 2001년부터 2005년까지 회장직을 수행하였다.‘민족통일협의회’전남 회장직을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수행하기도 했다.  그 인연으로 북한을 5회나 방문하였으며, 민방위통일교육 강사로 활동하기도 한다.

순천법원으로부터‘민사조정위원’으로 위촉받아 동부 6권의 민사 소송건에 대해서는 당사자들 간의 조정 역할을 하는데 의외로 성과가 좋아 몇 년 동안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활발한 활동으로 대통령 표창을 2회나 수여하였으며, 국민훈장 목련장, 통일원장관 표창, 법무부 장관 표창, 노동부 장관 표창 등 다수의 표창을 받았다.

부부가 함께가는 예인의 길

문 이사장은 1985년 무렵부터 그림을 시작하였다. 나이 들어 소일거리를 고민하다가 수묵화를 택했다. 고향 마을 조그마한 산 이름을 그대로 따 조산(槽山)으로 호를 짓고, 매주 화요일마다 광주 조선대학교 김대원 교수를 찾아가 사사받았다. 

2002년 전남미술대전 입선을 시작으로 같은 해 제14회 한국화 전국공모대전 입선, 제5회 전국 소치미술대전 특선, 제28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 등의 수상경력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2013년 8월 4일에 광양시역사문화관 특별전시실에서 ‘광양문화원 문승표 초대전’으로 처음 고향 사람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1982년에‘광양 JC’와‘포항 JC’간에 자매결연을 맺었는데, 2013년에 자매결연 30주년 기념행사를 하게 되었다. 오신 손님들께 평소 백운산 둘레길을 산책하다 담은 그림들을 선물했다. 그랬더니 주위 선후배 분들이 서둘러 전시회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특히 현)광양문화원장인 김휘석 후배가 적극적으로 나서서‘광양문화원 초대전’을 마련해 주었다. 문 이사장은 현재 매년 중국과 베트남 등의 국가들과 교류전을 갖는‘원소회’의 회원으로,‘광양미술협회원’으로 꾸준히 작품 활동에 열성을 보이고 있다.

문 이사장의 부인 정영숙 여사 역시 예인의 길을 함께하고 있다. 한동안 사진에 심취하였으며, 현재는‘한국무용’을 사사받고 있다. 비록 부부가 함께하는 작업은 아니지만, 같은 정서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 노후가 참 여유롭고 행복한 시간들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준비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아름답다.

사랑나눔을 실천하며, 그 속에서 크나큰 감동을 느끼며, 그 감동을 갖게 해준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문승표 사랑나눔복지재단 이사장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박행신 광양문화연구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