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46> 백운 아래 차향이 감돌다
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46> 백운 아래 차향이 감돌다
  • 광양뉴스
  • 승인 2015.05.26 09:15
  • 호수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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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다원 김상민 씨

 


섬진강은 언제 어느 곳에서 보아도 아름답다.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를 섬진강은 한없이 매끈하게 흘러간다. 섬진다원(다압면 금천리) 너럭바위 명당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은 오월의 신록과 형제봉을 되쏘는 노을빛이 어우러져 쓸쓸한 아름다움이 넘쳐난다.

휘어지는 물굽이와 빈 모래사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거미줄 같은 속을 씻어 내린다. 섬진다원 뜰에는 오월의 꽃들이 다투어 피어 있다. 말발도리, 제주수선화, 물매화, 수국, 패랭이꽃, 지는 금낭화, 새우난, 당연히 모르는 이름이 더 많은 꽃밭…. 이 마당은 유월 초(初)가 더 예쁘다고 안주인(백자영)이 일러준다.

 

 


12년 전 이 곳에 터를 닦고, 집을 지어 들어와 아이들 둘을 낳았다. 가람이와 가온이는 강 건너 쌍계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다압은 초등학교 때 배운 대로 우리나라에서 남북으로 제일 기다란 면이다. 거리상으로 다압초등학교 보다는 쌍계초등학교가 더 가깝다고 한다.

다실(茶室) 바깥은 풍경이 아니라 꿈결 같다. 통창 너머 반짝이는 초록과 다실을 감도는 차향이 그러하다. 섬진다원은 어느 때가 가장 좋으냐고 물었더니, 김상민씨의 대답은 2월이란다. 조용하고, 기운이 가장 좋을 때라며. 사람들이 보통 예쁘다고 할 때는 3월에서 5월이란다.

 

 

 

 

김상민 씨


사람들이 제일 많이 찾아올 때는 3월이고, 2월은 눈 여겨 찬찬히 바라보아야 변화가 보이는 때이란다. 싹을 틔우기 전의 상서로운 기운이 나무와 숲, 산언저리를 감도는 때이다. 놀기는 5월이 좋지만, 4~5월은 녹차와 발효차를 만드느라 정신없이 바쁠 때이기도 하다.

김상민씨는 1975년 광양에서 태어나 자랐다. 대학 시절 향림다회에서 처음 차를 마셨다. 차 맛 보다는 차를 마시는 분위기가 더 좋았다고 한다. 식물학을 전공하고 산림과 숲에 관한 환경조사 일을 주로 하며 살았다.

아내 백자영씨는 동갑나기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스위스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고 기업에서 교육담당자로 근무하였다. 2년 동안 주말부부로 살다가 귀농을 결심하고 신선대 뒤꼭지가 빤히 보이는 이 곳 산자락, 남편이 가꾸는 다원으로 들어왔다.

 

 

 

섬진다원


며칠 전 만들었다는 햇차를 우리는 김상민씨의 모습이 정갈하다. 녹차는 만들고 삼 일 째 되는 날이 가장 맛이 없는데, 불기운이 올라와서 차 맛을 가리기 때문이란다. 감안하고 드시라고 하는데, 차향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미각이야말로 천차만별이고, 내 입에 배인 맛이 최고처럼 느껴지는 터라, 갑론을박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차 맛이다. 주인장이 내어 준 햇차 한 모금에 다탁 앞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감탄사를 발했으니 정성으로 덖은 차(茶) 임에는 틀림이 없겠다.

섬진다원에서 녹차를 만들 때는 구증구포를 원칙으로 하는데, 첫 덖음하고 나서 시음을 하고, 6번 덖음 후에 2차 시음, 8번 덖음 후에 3차 시음을 한다. 시음은 불조절과 덖음 시간을 조절하기 위해서이다.

둥근 사발처럼 생긴 무쇠 솥은 반질반질 윤기가 흐른다. 첫 덖음이 가장 중요한데, 온도를 재기 위해 물을 조금 솥 안에 흘리니, 물이 구슬처럼 영롱하게 구르며 돈다. 물과 물이 뜨거움에 서로를 껴안으며 구슬처럼 솥을 구를 때, 이때가 350도에서 400도 쯤 이라는데, 바로 이 순간 신속하게 찻잎을 솥에 털어 넣는다.

찻잎 속의 물 성분도 그렇게 서로를 껴안으며 맛을 낼 채비를 하는 것이다.

두꺼운 면장갑을 다섯 겹이나 켜켜이 끼고 찻잎을 덖는데 뜨거운 열기에 금방 손이 익을 것 같다. 찻잎이 솥에 닿는 소리가 따글따글 솨솨 울린다.  
 

 


차는 인류에게 가장 오래되고도 널리 음용되는 음료 중의 하나이다. 중국 육우가 지은 다경(茶經)에 보면 BC. 2700년 경 신농시대 부터 마셨다고 한다. 차는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용으로 이용되다가 점차 기호 식품으로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의 차는 신라 선덕왕 때도 있었다고는 하는데, 차 재배가 시작된 것은 신라 흥덕왕 때 대렴이 당나라에서 차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은 후 사찰을 중심으로 전파된 것이라 한다. (차의 과학과 문화. 김종태 저. 도서출판 보림사)

광양은 차 시배지인 지리산 화개골과 인접해 있다. 고로쇠나무 수액을 많이 얻게 해 달라고 백운산 산신에게 차를 올리며 빌었던 민요의 내용을 보면 광양 차의 역사도 상당하다고 하겠다.

 

 < 고로쇠 물 풍풍 솟게 두강 작설 올리나니>

백운 계곡 봄 안개에 물소리가 높아 지네
고로쇠는 물오르고 보조스님 좋아했던 선동골에 작설나무 백설 덮인 양지쪽에 나풀나풀 돋은 새싹 한 잎 두 잎 따서 모아 두강 작설 그 맛내려 조심조심 손질하여 봉지 단지 담아두고 삼짓날에 제비 올 때 순천장에 옥항아리 깎지 말고 사와서는 옥룡골에 이슬 받고 도선국사 파둔 샘물 개 안 짓고 닭 안 울 때 옥항아리 물을 길어 옥탕관에 물을 끓여 백운차를 달이어서 천년 예언 도선국사 이 차 한 잔 올리옵세 백운산에 산신님네
백운사의 보조스님 고로쇠물 풍풍 솟게두 손 모아 비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출처 : 다도철학 정영선 지음. 너럭바위
 
광양의 차(茶)역사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차를 만드는 곳이 섬진 다원등과 몇몇 농가뿐이라고 한다.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그나마 줄어들고 재배농가나 생산농가가 큰 타격을 받으면서 차 산업은 내리막길을 걷는 중이다.

개인이 혼자 마실 요량으로 차를 덖거나 지인들에게 나눠 주기 위해 소량 생산하는 것 말고는, 거의 폐업상태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상민씨는 차의 미래가 밝다고 말하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겠다.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차 체험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젊은 사람들이 의외로 우리 차에 관심을 갖고 차 보급에 힘쓰는 것을 보면, 머잖아 차 경기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확신이 선다고 한다.

차를 마시다가 보면 차를 만드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 차가 최고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김상민씨는 그런 점에서 편안한 사람이다. 차를 덖다가 보니, 자기한테 맞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지만 집집마다 장맛이 다르듯 차 맛 또한 다른 건 당연한 것 아니겠냐는 김씨.

산 속 생활이 여유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어느 한 철 편히 쉴 틈이 없단다. 시골에 들어온 것을 후회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시골에 들어왔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차를 만들려고 하는 목적이 분명해서 후회를 할 겨를이 없다고 했다.

다원을 일구면서 가업으로 물려 줄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 꿈에 희망이 보이느냐는 물음에, 지금은 가온이가 아빠랑 차를 만들 것이라고 대답을 하지만, ‘나중에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한 후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차를 만드는 일도 부문별로 특화가 이루어져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찻잎의 생산, 차 제조, 유통이 체계적으로 분화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믿을 만한 찻잎을 들여오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차는 마시는 절차가 어려워서 가까이 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옛날 인간이 처음 차를 마셨던 연유(緣由)대로 차는 몸에 이로운 음료이다.

차는 또한 마시는 사람을 고요하게 한다. 한 잔의 차를 우리기 위해서는 약간의 번거로움이 필요하다. 번거로움을 마다않는 여유로움이 우리에게는 지금 필요하지 않은가?

하루에 차를 몇 잔이나 마시는 지 물었더니, 조용히 웃으며, “많이요.” 라고 말한다. 사라져가다시피 하는 차 문화를 지키는 김상민씨. 도선국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광양의 차 문화는 살리고 가꾸어야 할 고장의 전통문화이다.

정은주 광양문화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