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44> 길 위에 인문학의 꽃을 피우다
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44> 길 위에 인문학의 꽃을 피우다
  • 광양뉴스
  • 승인 2015.05.11 10:12
  • 호수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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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시립중앙도서관 사서 강은정

 

인생은 예정된 길이 아니다. 광양시립중앙도서관 강은정 사서는 어린 시절 본인이 도서관 사서가 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1남 4녀 중 막내로 자란 덕분에 언니 오빠들 옆에서 초등학생 시절부터 팝을 들었다.

‘No music, no life!’, 음악 없는 삶이란 상상조차 어려웠다. 당연히 팝 칼럼니스트의 꿈을 키웠다.
언젠가부터는 스포츠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테니스가 좋았다. 직접 라켓을 잡지는 못하고 대신 테니스 잡지를 부모님 몰래 3년 동안 정기 구독했다, 스포츠 전문 기자가 되어 피트 샘프러스를 인터뷰하는 꿈을 꾸면서.

꿈은 늘 꿈틀대며 변한다. 고3 때는 역사교사가 되고 싶었다. 다른 나라의 역사와 지리와 문화를 공부하는 학자를 동경하였지만, 나름 현실을 인정한 타협이었다. 역사교사가 된 본인의 미래를 그리며 마냥 행복한 고3을 보냈다.

프로그램 운영 전문 사서가 되다

인생이란 길은 구절양장이다. 어느 날 문득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는 길 위에 내동댕이쳐진 본인을 발견하곤 어디로 갈지 헤매는 게 우리네 보통 인생이다. 강은정 사서도 대학 시절 문헌정보학과를 다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내가 왜 문헌정보학을 공부하고 있을까를 고민하다 졸업을 당하고, 우여곡절 끝에 광양시립도서관 사서(司書)가 되었다.

비록 본인이 꿈꾼 길은 아니었지만, 사서라는 직업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다행히 걱정했던 것보다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도서관 사서의 일이 그동안 꿈꾸어 왔던 팝 칼럼니스트와 스포츠 기자, 그리고 교사의 역할을 융합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21세기의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대출해주는 곳이 아니었다. 역동하는 사회 환경에 맞추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였고, 사서는 그 운영의 주체였다.

비록 학창 시절에는 사서란 직업이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지만. 프로그램 전문 운영자로서의 역할은 강은정 사서가 꿈꾼 직업의 총화였다. 팝의 감수성과 스포츠의 역동성, 그리고 학생들에 대한 무한 애정은 도서관 사서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필수 조건이었다.

어느덧 강은정은 8년 차 프로그램 운영 전문 사서가 되었다. 그동안 갓난아기부터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연령별 맞춤형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예를 들어 생후 35개월까지의 아기를 대상으로 책과 더불어 인생을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아 ‘북스타트(Book-Start)’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를 대상으로는 주말과 방학을 이용하여 책을 활용한 요리수업, 그림수업, 역사수업 등 다양한 통합형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그 밖에 성인들을 위한 자격증반과 취미반, 다문화가족을 위한 독서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였다.

어르신이 걸어온 길을 책으로 엮다

싱그러운 5월 어느 날, 광양시립중앙도서관 1층 휴게실에서 강은정 사서와 차 한잔 나누었다.

“지금까지 진행한 프로그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업은 무엇인가요?”
“지난해 지역의 60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내 인생 자서전 쓰기’사업을 1년 동안 진행했습니다. 뜻밖에 본인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차근차근 메모로, 일기로 보관해 놓으신 어르신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글들을 모아 개인의 삶을 정리해 본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우리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오셨던 분들이 대부분이니까 지역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컸습니다.”

“글을 써서 한 권의 책을 만든다는 게 마음만으로 되는 만만한 작업은 아닌데, 결과물이 나왔나요?”
“맞아요. 사실 1년 남짓 글쓰기 교육을 받고 한 권의 책을 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죠. 다행히 어르신들 특유의 성실함과 끈기 덕분에 작년 12월에 여섯 분이 책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출판 기념회도 열었겠네요!”

“예, 저자의 가족과 지인들을 초청해서 출판 기념회를 했는데, 축하 공연, 축하 메시지, 낭송 등이 어우러진 감동적인 행사였습니다. 어르신들이 뿌듯해 하시는 모습을 보고 저도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세상사가 그렇다. 일이 힘들어도 일꾼들은 보람을 먹고 산다.

강은정 사서는 보람의 길을 개척하는 진정한 일꾼이었다.

길 위에 인문학의 수를 놓다

광양시립중앙도서관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길 위의 인문학’프로그램에 응모해 2013년 이후 3년 연속 선정되었다. 중앙도서관이‘길 위의 인문학’에서 주안점을 둔 부분은 광양 고유의 인문학적 가치와 자산을 발견해보자는 것이었다.

실례로 2013년에는 광양 출신으로 전국적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 매천 황현과 더불어 잘 알려지지 않은 신재 최산두를 재발견하는 시간을 가졌다.

작년에는 백운산휴양림에서‘숲속인문학’을 진행하였고, 또 청소년들과 함께하는‘광양역사 체험캠프’를 진행했다.

특히,‘광양역사 체험캠프’는 지역 청소년들에게 광양 지역사를 소개하는 참 소중한 프로젝트였다. 광양고, 광양여고, 제철고의 역사동아리 친구들 30여 명과 2차례 캠프를 진행하였는데, 그들의 열정은 정말 부럽고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다.

나태주 시인의‘풀꽃’이라는 시 문구처럼 청소년들은 한 명 한 명‘자세히 보아야 이쁜’것을 새삼 절감하였다.

올해는‘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주제로 강연과 탐방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역에서 대를 이어 가업을 가꾸는 인물, 그리고 오랫동안 지조를 지키면서 살아가는 인물 등을 만나 그들의 평범하지만 비범한 이야기로 길 위에 인문학의 수를 놓을 계획이다.

강은정 사서는 광양시 문예도서관사업소(소장 곽승찬)의 중앙도서관팀 소속이다. 중앙도서관 운영의 전체 그림을 담당하시는 김현숙 팀장과 진민영, 최준혁, 이영구 주무관과 함께 시민들을 인문학의 길로 안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필자에게, 강은정 사서는“서류로만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뒹굴면서‘상호작용’하는 지역 문화의 일꾼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밝혔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우리와는 다른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를 접하고 싶다.”고, 자신은 “Multi-cultural(다문화) DNA를 소유한 것 같다.”고 하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인문학의 꽃을 피우느라, 강은정 사서는 정작 본인의 결혼 적령기는 놓치고 말았다. 올해는 꼭 평생의 동반자를 만났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광양의 문화를‘둘이서 함께’발굴하고 선도할 수 있는 동지이기를 기원해 본다.

광양문화연구회 이은철(광양제철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