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42> 고독한 예술인, 행복한 조력자
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42> 고독한 예술인, 행복한 조력자
  • 광양뉴스
  • 승인 2015.04.27 09:38
  • 호수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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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노 박정교 씨

 

박정교 씨.

예술의 길은 고독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말이 발레리노 박정교 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삼스럽게 가슴에 다가왔다.

광양에서는 취약한 예술 분야인 발레, 그것도 발레리노....그를 만나기도 전인데‘발레리노’라는 말을 듣는 순간, 흔치 않은 길을 걸어 왔을 노독(路毒)감이 필자에게 전해져 왔다. 그리고 미소년 같은 첫인상에서 발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늦깎이로 시작한 발레 사랑

박정교 씨의 어머니 최금순 여사가 운영하고 있는‘금정’광양불고기집에서 필자는 그와 첫 만남을 가졌다. 향긋한 원두커피를 내주며 광양에서 태어났지만 광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무용생활을 하다 광양으로 다시 온 지는 6년 되었다고, 지금은 조선대학교에서 초빙객원 교수로 있으며 주말에만 어머니 일을 돕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토록 열정적으로 하던 발레를 그만두고 오게 된 것은 아버님의 별세와 발레단 생활을 하면서 생긴 부상 때문이었다. 어릴 때 유도선수였던 그는 조선대학교 사회체육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 1학년 때 비로소 접해본 발레는 그를 매료시켰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렵고 힘든 발레의 길로 접어들었다. 발레를 처음 시작했을 무렵 연습 중 오른 쪽 발목을 조금 다쳤는데 방치해 두었던 것이 탈이었다.

 

 


대학 졸업 후 발레단에 입단하고 나서 많은 공연과 연습이 발에 무리를 가져왔고 잦은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병원에서 3년 정도 주사를 맞으며 버텨오다가 결국 발바닥 뼛조각이 깨져 수술을 감행했다. 이후에도 발목 인대가 찢어져 두 번의 수술을 하였다.

지금도 구두를 제대로 신고 걷지 못할 정도로 발이 아프다. 발레리노의 생명은 점프와 턴 동작인데 부상 때문에 자유롭지 못했다. 완전하게 재수술을 하고 무용을 아예 그만 두고 재활치료를 하면 정상으로 돌아오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발레가 좋으세요?”

묻는 필자에게 그는 광주시립발레단에서 만난 아내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아내는 광주시립발레단에서 주역무용수였고 자신도 솔리스트로서 어느 정도 인정받는 단계에 있던 그 즈음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아이도 생겼고, 이참에 혼자되신 어머니를 도와드리면서 아픈 발도 쉴 겸 무용을 그만두려고 광양으로 왔다. 그런데 발레와 다시 연결되니 또 하게 되더라고. 그래서 지금은 조선대학교와“금정”을 오가고 있다고 했다. 세 아들을 낳아 키우느라고 발레리나로서 활동을 못하고 있는 아내를 생각하면 많이 미안하다면서, 주목받는 주역무용수의 자리를 흔쾌히 버리고 자신을 따라 광양으로 와 준 아내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라고 애정 가득한 말도 함께 전했다.

 

 

 


후학양성에 대한 포부

박정교 씨의 예술관 내지 철학관은 첫 번째로 자의적인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서 시작
해야 중도 포기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한다.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성장해야 비로소 무대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 분야가 발레이다. 두 번째로는 관객과 소통하려는 태도이다. 무대에서 표현하는 희로애락을 무용수와 관객이 서로 교감할 때 관객도 흥미가 생기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예술을 이해하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고, 관객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진심으로 감동한다고.

그는 인프라가 부족한 광양에서 후학 양성을 위해 영리 목적이 아닌 체험 학습형 발레스쿨을 만들고 싶
어 한다. 지금 가르치고 있는 조선대학교 무용과 학생들과 연계해서 광양의 중고등학생들과 공연을 하는 것도 학생들에게 무용을 접할 기회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이다.

작년 7월에 광양문화예술회관에서 ‘봄날은 간다’로 재능기부 공연을 했을 때 극장을 찾아준 광양 시민들이 감동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올해 후반기에도 광양에서 공연을 계획 중이다. 그는 이런 기회를 접하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무용에 흥미를 느끼기를 원한다. 무대와 의상, 조명 등 만만찮은 경비지만 작년처럼 사비로 할 생각이다.

또한 이 기회를 빌어 작년 기부공연에 도움을 주신 황재우 회장님, 사랑병원 고준석 원장님, 동광양새마을금고 백경현 이사장님, 광양만라이온스 가족들, 동광양상공인회 회원들과 대광교회 교인들 그리고 개인적으로 도움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나의 멘토는 주위에 계신 분들

누구를 멘토로 삼고 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멘토는 꼭 유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 주위에 있는 모든 분들이 스승이자 멘토라고 생각해요. 삶에 대한 태도, 인생에 대한 방향, 예술을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등대와 길 같은 분들이 주위에 있으니까요. 저에게는 발레를 시작할 때부터 지도해주신 은사님이 계신데 무용의 기능적인 것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의 마음가짐, 지도 방법,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방법 등 많은 것을 지도해주셨지요. 학생들은 은사님을 무서워하지만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그 학생들이 고맙다고 찾아오는, 카리스마가 대단하신 분입니다. 본받고 싶은 분이죠.”

“각 분야에 유능하신 분들을 저는 고수라고 부르는데 이 고수들이 제 주변에 속속 박혀 있어요. 주변 분들을 멘토로 삼는 것이 저랑 같으시네요.”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게 뭐 그리 반가운 일이라고 둘 다 활짝 웃었다.

그는 기억에 남는 제자 중에 고 2때 무용을 시작했는데 유연성이 없고 어려운 점이 많아서 무척 울렸던 제자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손꼽히는 국립발레단에서 활동하고 있고 그 제자를 보면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아들에게 발레를 시키고 싶냐고 물었더니 초등학교 4학년인 첫째가 얼마 전 발레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필자는 관객에게 행복한 감동을 전해 줄 또 한 명의 발레리노에 대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광양의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파

박정교 씨는 광양에서 무용공연을 통해 시민들과 접한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무용협회를 만들어 광양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광양시민들이 좀 더 많은 예술장르를 접하게 하고 싶다고도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무용을 막 시작했을 때의 첫 공연과 광주시립무용단에서 아내와 같이 한 마지막 공연‘명성황후’이다. 가장 보람 있었던 공연은 역시 작년에 재능기부로 광양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 했던‘봄날은 간다’라고 한다. ‘봄날은 간다’는 제 13회 전국신인 안무가 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으로 준비과정이 힘들었던 만큼 보람도 있고 평가도 좋았다. 광양에서 계속 질 좋은 공연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현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어서 학생들과 같이 전막 공연이 가능한 것도 참 다행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에서 워십댄스를 공연 한 적이 있다. 공연 중에도 공연이 끝난 다음에도 교인들과 기쁨이 교감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이 감동이 종교적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광양시민과 교감할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것을 알기에 앞으로 더욱 좋은 공연을 보여주고 싶단다.

그리고 광양의 문화예술계가 서로 존중하면서 발전해 나가길, 순수예술이 힘들고 어려워도 공존할 수 있게 아울러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또한 여러 가지 예술장르가 합쳐진 복합예술의 발전과 개인보다는 예술을 위해 화합하려는 노력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문화예술 인프라가 부족한 것은 젊은 예술인의 몫이므로 이런 부분에 일조하고 싶다고 한다.

끝으로 항상 믿고 지켜봐 주시는 어머님‘최금순 여사님’께 꼭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자식들을 키우면서 돌아보지 못했던 예술 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고 한다.

누구와의 경쟁도 아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고독한 발레리노의 길, 박정교 씨의 예술 세계가 한층 빛나고 돋보이는 것은 단지 예술은 겸손이 발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 그리고 효자이고픈 그의 마음이 신앙심과 함께 건강하게 예술의 밑바닥을 받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광양에서 그의 발레 공연을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박옥경(광양문화연구회원, 광양문인협회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