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37> 인생을 행복하게 만든 세 가지 선택
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37> 인생을 행복하게 만든 세 가지 선택
  • 광양뉴스
  • 승인 2015.03.13 20:02
  • 호수 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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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의 달인이 세상을 이끈다, 박보영 박사

 

 

경기도 용인 출신의 박보영(67) 박사께서 광양으로 온 지 어느덧 4반세기가 되었다. 1986년 포항제철 동·서 초등학교 개교 추진위원으로 포스코교육재단과 인연을 맺은 이후, 1991년 광양제철남초등학교 교감으로 부임하면서 광양에 둥지를 틀었다.

이후 광양에서의 하루하루가 너무나 행복하였고, 정년퇴임한 지금도 “따뜻하고 인심 좋고 음식이 맛깔난 광양을 떠날 수가 없다.”고 강조하였다.

인터뷰 내내 박보영 박사의 낯빛에서는 마치 광양의 지명처럼 따뜻하고 온화한 광채가 났다. 시샘이 난 필자가 여쭈어 보았다.“이렇게 평온한 얼굴빛을 가지게 만든 것이 무엇인가요?”“제 인생을 행복하게 만든 것은 세 가지의 선택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앙, 교육, 아내였습니다.”

 

천주교 신자가 되다

박보영 박사의 호는 소산(笑山), 즉 ‘웃음의 산’이다. 신부님께서 지어주셨다. 필자가 인터뷰하는 2시간 동안 받은 느낌을 하나의 단어로 압축하면 바로 ‘온화함’이었다. 그 온화함의 다른 이름이 바로‘웃음의 산’일 것이다. 소산이란 호는 박보영 박사에게 정말 잘 어울렸다.

소산 박보영 박사가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은 1987년이었다. 교육자의 길은 힘들다. 특히나 참된 교육을 고민하는 교사에게는 가시밭길이다. 박보영 박사도 이러한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종교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결국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세례명은‘유스티노’였다.

박보영 유스티노의 신앙생활에서 2000년 3월 4일은 큰 의미가 있는 날이다. 이날 고3이 된 딸을 위해 묵주기도를 시작하였는데, 어머니 장례일을 제외하고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물론 가족만이 아닌 이웃을 위해 감사한 마음으로 날마다 기도한다.

박보영 유스티노가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은, 믿음이 없는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올바른 교육자가 되기 위한‘선택’이었지만, 신앙인 박보영의 입장에서는 ‘선택’이 아닌‘허락’이었다. 박보영 유스티노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을 ‘다행이요, 기쁨이요, 영광이다.’라고 하였다.

초등 교육자가 되다

 

박보영 박사는 농촌에서 종손 집안의 맏이로 태어났다. 중·고등학교 시절 왕복 16Km를 걸어 등하교하면서 가난한 농촌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였다. 어느 날 덴마크의 영웅이자 농촌운동가인 달가스(Dalgas)와 구룬트비히(Nikolai Grundtvig)에 대한 서적을 읽다가, 삶의 지표를 그들에게서 찾아내고 농과대학 축산과로 진로를 정하였다. 그러나 대학진학에 실패하면서 다시 한번 진로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삶과 사상을 접하면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주인 정신을 심어주는 일에 생애를 바쳐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교육자의 길을 선택하였다. 마침내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인천교육대학교로 진학하였다. 교대 재학 시절, 평생의 스승인 고 김계곤 교수님을 만나 초등교육이 본인의 길임을 재삼 확인하였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서도 교육만을 생각하며 살았다.“교육엔 AS(애프터 서비스)가 없다. 사전에 서비스를 다하는 BS(비포 서비스)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매순간 최선을 다하였다. 1992년 포스텍의 김병원 교수를 만나면서는 ‘대립토론’의 중요함을 깨닫고,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1998년엔 교육학 박사 학위를 땄다.

이후 20년이 넘는 지금까지‘토론의 달인이 세상을 이끈다’는 신념으로 학교현장에 토론문화를 보급하기 위해 연구와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러한 결과를 모아『대립토론』을 비롯한 여러 권의 토론 관련 책도 저술하였다. 퇴직 후에도 대립토론교육연구회 회장을 맡아 전국을 돌며 후배 교사들에게 토론 지도법을 강의하고 있다.

전국 순회강연 때 가장 강조하시는 내용을 하나만 소개해 주십사 부탁드렸더니, 바로“ST를 PR하면 ND에 이른다.”를 말씀하셨다. 풀어보면“늘 공부(Study)와 수업(Tuition)을 연구(Research)하면 네트워크(Network)와 인생설계(Design)가 구축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박보영 박사는 문구 만들기의 달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단지 구호가 아닌 설득력을 지니는 이유는 본인이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공짜로 즐기는 세상』을 쓴 MBC 김민식 PD를 만나 소셜 미디어 시대에 적응해야 함을 배우고 곧바로 실천에 들어갔다. 티스토리 블로그와 네이버 밴드를 만들어 대립토론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공개하고 사이버 토론의 장을 만들었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생 디자인을 위한 오프라인 활동도 왕성하게 한다. 최근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하고 미국·캐나다 여행까지 다녀왔다.

김 PD는 박보영 박사를“최고의 청춘”이라고 표현하였다.

 


아내 김정임을 만나다

지난 2014년, 박보영 박사는 부인의 회갑 기념으로 아주 의미 있는 일을 두 가지 하였다. 첫 번째, 두 분이서 미국과 캐나다로 두 달간 자유여행을 다녀왔다. 두 번째, 『‘정의를 모르는 자는 사랑을 말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아내에게 주는 이야기』라는 긴 제목의 책을 박정임 여사의 회갑기념 선물로 출판하였다.

이 책에서 늘 뒷바라지하는 마음을 삶속에서 실천한 아내에 대한 감사함을 마흔세 가지의 이야기로 엮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아내, 바로 안 해(SUN)를 존경한다”이고, 마지막 이야기는“나의 인생에서 가장 값진 삶의 흔적”이다.

팔불출 남편이라, 아내 바보라 불리는 걸 자랑스러워 할 정도로 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경함을 책 구절구절에 담아 놓았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삶의 고개들이 많은 신혼들을 위한 부부 생활의 교과서와 같은 책이다.

 

 


박보영 박사는 연애 시절 미래의 부인에게‘서리꽃’이란 별명을 지어주었다. 서리꽃이 겉으로 보기엔 차가운 얼음인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쁜 육각형의 결정체이듯, 부인도 처음에는 쉽게 사귀기 힘든 타입이지만 서리꽃처럼 자기 자신을 굳건히 지키는 내적 자아를 지닌 것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2010년 구례군 사도리에 주말별장을 지을 때, 그 집의 명의를‘안 해(SUN) 김정임’의 이름으로 하였다. 자기를 희생하며 살아온 부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또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부인을 위해 용돈을 절약하여 모은 돈으로 1950년대에 제작한 스피커와 진공관 앰프를 구하여 선물하였다. 지금도 오디오 기기를 업그레이드할 준비를 진행 중이시다. 소산 선생님의 아내 사랑은 가히 끝이 없다.

2010년 정년퇴임하던 해, 부인의 권유로 국궁을 시작하였다. 국궁에 처음 입문했을 때 화살이 과녁에 가 닿지도 못하고 현이 얼굴을 때리는 고통도 있었지만, 꾸준히 연습한 덕분에 2년 후 2012년 3월 3일에는 화살 5발 모두를 과녁에 적중시키는‘몰기’를 하였다. 이제는 대회에도 가끔 나가고 다른 사람에게도 적극적으로 국궁을 권하는 국궁 마니아가 되었다.

예로부터 인생 칠순을 뜻대로 행하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 종심(從心)이라고 하였다. 곧 칠순이 되는 박보영 박사의 경지를 표현한 말인 것 같다. 신앙의 바탕 위에 강의와 저술, 그리고 아내 사랑과 취미 생활이 어우러진 조화로운 삶이 부럽다.

광양문화연구회 이은철(광양제철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