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35> 진정한 공부는‘줄탁동시’가 일어나야
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35> 진정한 공부는‘줄탁동시’가 일어나야
  • 광양뉴스
  • 승인 2015.02.27 21:35
  • 호수 6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8년여 교직인생을 마무리하고 정년퇴임하는 광양여고 박영식 교장선생님
한 해의 시작이 1월에 있고, 하루의 시작이 아침에 있다면 새 학기의 시작은 3월에 있다. 3월이 되면 새 학교에 부임하는 교사도, 새 학년에 올라가는 학생도, 새 학교에 입학하는 신입생도 설렘이 가득이다.

‘우리 반 담임은 누가 될까?’, ‘내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어떤 분이실까?’,‘새 교장선생님으로 누가 오실까?’각자의 위치에 따라 그 설렘은 구체화된다.

교정엔 신입생의 풋풋함과 적당한 긴장감이 자리를 차지한다. 오늘은 학생들의 희망직업 1순위인 그곳에서 38년 3개월을 근무하고, 2월 28일자로 정년퇴임한 광양여고 박영식 교장선생님을 만나 그의 교직인생을 되돌아보았다.
 
교직 입문 그리고 교사의 길
 
△교직에는 어떻게 들어서게 되었나요?

-저는 광양 옥룡에서 태어났습니다. 진주교대를 졸업하고 1976년 11월 5일자로 거문초등학교로 초임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살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중등교사시험에 응시했습니다.

지리과목으로 응시했는데 전국에서 혼자 합격했습니다. 77년 3월 1일자로 여수 화양중학교에 부임 받아 중등교사로 근무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입니다.
 
△교대를 나오셨다니 같은 길을 걷는 후배로서 반갑습니다. 중등교사로 지내시면서 수많은 제자를 만나셨을 텐데,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78년부터 근무하던 약산중학교가 생각납니다. 3학년 담임을 하면서 교실에 백열등을 설치하여 야간 자율학습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실에 전등이 없던 시절이니….그렇게 공부를 한 끝에 광주연합교사에 68명이 합격하여 개교 이래 최고의 실적을 거양했습니다. 또 82년 여수고등학교에서 만난 3학년 5반 제자들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학생들과는 지금도 수시로 만납니다.

당시 교장선생님이 <깜지교장>이라는 별명이 있는 분이셨습니다. 깜지가 뭔지는 들어보았지요? 하루에 시험지 양면에 목표한 깜지를 무조건 써 와야 합니다. 공부를 했는지 안했는지 보다 깜지를 썼는지 안 썼는지 결과로만 말하는 분이셨습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한 후 다시 집에 돌아가서 깜지를 쓰느라 시간을 할애해야 했습니다.

저는 형식적으로 하는 것에 찬성할 수 없어서 검사할 때 양이 부족하더라도 형식적이지 않으면 통과해주는 등의 융통성을 발휘하였지요.‘양을 채우지 말고 진짜 공부를 해라’는 게 제 신념이었거든요.

교장선생님께 불려가기도 하고, 밤늦게 추리닝 바람으로 모여 군대식으로 전체 기합을 받기도 했지요. 그런 저의 정성이 통했는지 여수고를 떠날 때는 총동문회로부터 모교 발전을 위한 공로로 교사로서는 최초로 감사패를 받았습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학생들과 함께 했다는 여수고 시절의 열정에 존경을 표합니다.  전문직으로 근무도 하셨는데 그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장흥교육청 장학사로 4년, 순천교육청 장학사로 1년 근무하였습니다. 사회체육담당 장학사 일을 했는데,‘교실진단기법 중등편’을 주도적으로 개발하여 각 학교에 보급하였습니다. 이후 특별연수기관으로 지정받아 연수를 실시하였고, 같은 주제로 중등교감자격연수 강사로도 출강하였지요.

순천교육청 장학사 시절에는 중학교 무시험 배정업무를 하였습니다. 당시 순천은 신도심의 급격한 인구증가와 구도심의 인구감소로 인한 수요공급의 불일치 문제로 학부모시위까지 있을 정도로 무시험배정에 대한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던 때였습니다.

초등학교 학부모공청회, 전화 상담, 방송 대담 등으로 원만하게 해결하여 정상적인 학사운영이 이루어지게 한 일이 기억에 납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고향사랑도 지극하셔서 광양에서만 17년의 교직생활을 하셨습니다. 저 역시 17년을 근무했는데, 아마도 스쳐 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웃음).

광양고 5년, 백운고 2년, 광양실업고 교감 4년, 광양고 초대교장 3년, 광양여고 교장 3년으로 교사, 교감, 교장을 모두 역임하셨네요. 광양에서의 교직생활은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90년에 광양고등학교에 부임했는데 개교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면학분위기 조성이 안 될 때였습니다. 학부모대표와 협의하여 학부모 지원 하에 영어, 수학 심화반을 만들어서 운영하여 효과를 많이 보았습니다.

여름 방학 동안 학생들에게 오후 자율학습을 시키려고 보니 에어컨이 없어 학습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학부모의 지원으로 에어컨을 설치하려고 보니 이번에는 전압이 낮아 설치가 불가능한 겁니다. 400V 승압공사를 먼저하고 다음에 에어컨을 설치하였습니다.

날씨가 더워 엉덩이는 땀으로 흥건하였지만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던 일이 보람으로 다가옵니다.
 
광양여고 그리고 축구부
 
△교장선생님께서는 교직의 마지막을 제 모교이기도 한 광양여고에서 보내셨습니다. 부임하실 때의 결심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교직 마무리를 고향에서 하면서 무언가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교육에서의 좌우명은 줄탁동시입니다. 병아리가 톡톡 쪼는 것을‘줄’, 어미닭이 탁탁 쪼는 것을‘탁’이라고 합니다. 병아리가 바깥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서는‘줄’과‘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즉 모든 학생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재능은 다 소중하고, 교육의 효과는 줄탁동시일 때 극대화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학생과 교사가 함께 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처음의 결심과 비교하였을 때 얼마나 이루셨을까요?

-학력 신장을 위하여 심화반이 앞에서 이끌어가고, 매화반(보충반)이 뒤에서 미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전교생이 목표를 향하여 방향성을 잃지 않고 능동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교장실에서 입학사정관 모의면접을 실시하는 등 명문대 입시에 대비하였고, 2015학년도 대학입시에서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의 명문대에 합격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다양한 인재 양성이 목표였는데 올해 진학 실적으로 보면 80%는 성공했다고 봅니다.
 
△광양여고가 앞으로 명문교로 나아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에 학교가 확실한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지역사회, 학부모가 삼위일체가 되어 유기적으로 교육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이룰 때 광양여고 뿐 아니라 광양 교육 전체가 발전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광양여고에는 여자 축구부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축구부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여자 축구부는 남자 축구에 비해 자발성이 많이 부족합니다. 스카우트를 하기에도 어려움이 많고요. 그러다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이 많이 모이고, 그런 학생들에게는 기숙사비나 학비 지원이 뒤따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습니다.

교육지원청에서는 코치비와 훈련비는 지급되지만 난방비와 숙식비 등은 학교자체 해결이라 힘든 점이 많습니다. 축구대회 한 번 참가하는 데 약 2000만원 가량 듭니다. 지도자 포함 30명 정도의 버스 대여비, 숙식비 등을 계산하면 그리 됩니다. 국가대표로 뽑혀 이름이 좀 알려지면 좋은 조건으로 다른 곳으로 가 버리는 것도 어렵고요.
 
△그럼 어떻게 하면 여고 축구부를 활성화할 수 있을까요?

-4년제 대학팀이 신설되고 있고, 사회에서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선수들의 의욕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나 학부모의 지원만으로는 영양가 있는 식사, 좋은 코치, 알찬 전지훈련, 각종 대회 참가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뜻있는 기업체의 후원이 절실합니다.
 

퇴임 이후의 삶
 
△교장선생님께서는 2월 28일자로 38년간 몸담아 왔던 정든 교단을 떠났습니다. 정년퇴임 이후의 삶은 어떠실까요?

-오전에는 도서관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문을 읽고 관심 있는 기사를 스크랩하면 오전이 갈 것 같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미래학, 또 학생들의 진로교육에 관심이 많아 관련 자료를 많이 모아두었습니다.

사교육 절감에 대한 자기주도 학습방법, 미래학과 경제교육을 통한 진로지도, 신문활용을 통한 인문학 교육을 주제로 한 교육기부를 하고 싶습니다. 학생들의 진학설명회 때나 학부모교육 등에 저를 불러주시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교육과 관련지어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입니다. 요즘 학생들은 사교육에 의존하여 진도 나가기에 급급합니다. 자기 주도적이고 내실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논어 학이편 주해에‘學之不已, 如鳥數飛也’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배움이란 그치지 않기를 새가 쉬지 않고 날개 짓하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쉬지 않고 배우고, 배운 것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것에 관해 배우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긴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년 이후의 삶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축원합니다.    
 
양선례(광양문화연구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