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 23〕 흙이 살아야 사람이 살 수 있다.
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 23〕 흙이 살아야 사람이 살 수 있다.
  • 광양뉴스
  • 승인 2014.12.01 11:22
  • 호수 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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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매실농원 홍쌍리 명인 이야기

 

광양청매실농원의 홍쌍리 명인은 우리나라 최초의‘매실 명인’이다. 그 동안 TV 출연은 물론이고, 매실과 건강에 관한 책만 해도 세 너 권이나 냈으니, 명실공이 그 분야 전문가이다.

홍 명인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새벽 5시면 일어나 매화 밭으로 나선다. 카메라, 메모지, 전정가위를 빼놓지 않고 챙기신다. 꽃이 방긋 미소 지으면 카메라에 담고, 엇뻗은 나뭇가지도 잘라주고, 꽃들과 다정하게 대화한 내용을 기록하신다.

아니 보다 더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밀집모자’에‘몸빼바지’농사꾼 차림이시다. 그‘밀집모자 몸빼바지’차림은 “흙이 부르는 그날까지 시들지 않는 아름다운 농사꾼으로 살고 싶다.

엄마의 품속 같은 농사꾼, 고향 같은 농사꾼, 못 잊어서 찾아오는 농사꾼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외치는 당신의 자존심이자 신념이시다.

나는‘매화 어머니’라오

홍 명인은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시아버지 김오천(1988년 작고) 씨를 따라 광양으로 시집 왔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난 명인에게 밤나무와 매화는 심히 고단한 일이었다. 남편이 경기도 남양에 있는 광산에 투자했다가 두 손 들고 말았다. 홍 명인은 힘든 일에 지쳐서, 빚 독촉에 시달려서 가출 보따리를 수없이 쌌다. 매화꽃 향기를 맡으면서 하염없이 눈물 흘리기 일쑤였다.

그런 고통에 지쳐 있을 때 매화꽃이 말했다.“엄마, 엄마, 니 고마 울고 여서 내캉 살자!” 그 소리를 듣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마침 산비탈에 핀 백합화를 발견했다. 한탄과 탄식의 노래가 절로 나왔다.

“외로운 산비탈에 핀 흰백합화야, 니 신세나 내 신세나 왜 이리 똑 같노? 그렇지만 너는 네 향이 나서 이 산천을 다 보듬지만, 앞에는 지리산 뒤에는 백운산 가운데는 섬진강, 사람이 그리워서 못살겠다. 새벽안개 솜털 이불 덮혀 있는 저 섬진강으로 사람들을 모아봐야겠다.”면서 매화를 심고 심었다.

법정 스님의 한 말씀이 더 컸다. 스님은 매화꽃을 좋아하셔서 제철이면 찾아오셨다. 하루는 지나가는 말투로“저 산 꼭대기까지 매화나무를 심어서 여기를 천국으로 맹글어라. 마음에 찌꺼기가 있는 사람 다 버리고 살 수 있게!” 하셨다. 그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스님, 나 모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너무 힘들었기 대문이었다. 그랬지만 가시고 난 후 밤나무를 하나하나 베어내고 매화를 심었다.

“1만 그루가 넘는 매화가 하나같이 내 눈물을 받아먹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매화나무에 핀 꽃은 딸, 열매는 아들이라고 부른다.“난 세상에서 아들딸이 가장 많은 사람이지요.” 그래서‘매화 어머니’란다.

 

 

흙이 밥이요 산천초목은 반찬이다
“매화꽃은 내 딸이데예/ 매실은 내 아들이데예/ 아침이슬은 내 보석이데예/   이 여인이 부러우면 흙의 주인이 되어보이소.”홍 명인이 늘 즐겨 부르는 자작 노래 한 구절이다. 홍 명인은 진정으로 흙을 사랑한다.
당연히 그 위에서 나는 온갖 잡초들도 사랑한다.‘흙이 살아야 사람이 살 수 있다’는 생명사랑의 생활 철학을 일찍 깨달았다.

광산의 후유증인 빚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어느 비오는 날 산에 가서 수건을 입에 물고 서럽게 울었다. 그랬더니 흙이 이리 말하더란다.“야, 이 새댁아. 울라면 니 입에 물고 있는 수건을 내버리고 니 맘껏 울어삐라. 니 눈물 콧물은 이 넓은 가슴으로 다 받아두었다가 매화나무가 물 먹고 싶을 때 줄란다.”수건을 버리고 펑펑 울었다. 가슴이 뻥 뚫리더란다.

그때 흙은 우리 인간들이 오줌 싸고 똥 싸고 코 풀든지 침 뱉든지 온갖 것들은 물론이고, 힘들고 어려울 때 땅을 치고 통곡해도 다 받아준다는 그 큰 가슴을 알게 되었다. 퍼뜩‘흙이 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흙이 내 밥이요 산천초목이 내 반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흙에게 죄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도 했다.

이러한 흙에게 어찌 농약이나 제초제를 사용할 수 있으랴. 우분, 돈분, 계분 등 천연비료만을 사용하고, 잡초 등의 풀은 일일이 손으로 제거했다.

매화나무 밑에 야생화를 심었다. 제초제 대신 야생화를 심고 가꾸려면 그만큼 힘들고 인건비도 부담되지만 친환경농법을 고집스럽게 지켜왔다.

 

 

 

음유시인 같은 시와 노래 속에서
홍 명인은 어릴 때부터 글을 좀 잘 썼다고 한다. 매화든 야생화든 돌이든 흙이든 언제 어디서든 대화를 나누며, 그 대화들을 기록했다. 그래서『매실 아지매 어디서 그리 힘이 나능교』(디자인하우스, 2003),『밥상이 약상이라 했제』(청년사, 2008)과 같은 책을 엮어낼 수 있었다.

“어느 해 봄에 매화꽃이 휘날리고 봄비가 내리는디 제비꽃이 이리 말합디다. 엄마, 봄비에 세수하고 부슬비에 손발 씻고 소낙비에 목욕하고 어두운 흙 이불 헤치고 세상 밖에 보시시 나와보니께 내 동무가 많아 참 좋다 그쟈? 이럽디다.”

홍 명인과 마주앉아 대화를 하다보면, 일상적인 담화식 주고받는 대화가 아니다. 온통 음유시인들이 쏟아내는 음유시 그 자체이다. 막힘도 없고 거침도 없이 쏟아지는 언어들이 모두 시요 노래이다.

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언어들이 맑은 물길을 차고 헤엄쳐가는 물고기들의 유영마냥 유창하고 유연하게 흘러간다. 이 같은 언어는 활자화하여 시각화되기보다는 당연히 청각기능을 활용하여 귀로 듣는 것이 더 감칠맛이 난다.

그래서 명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푹 빠지고 만다. 몇 시간이고 줄줄줄 흘러나오는 시와 노래는 모두 매화와 꽃을 가꾸면서 주고받았던 이야기들이다.

지난 2011년 3월 30일에 국립국악원에서 가수 유열이 진행하는 국악 콘서트인 국악과 함께 하는‘차 한 잔과 이야기’ 다담(茶談) 1회차 공연에 손님으로 초대되었다.“광양의 매실 명인 홍쌍리 어르신의 구수한 입담과 어록이 감동적이었다. 그분의 진한 감동적인 삶의 모습들에 진행자였던 가수 유열 씨는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관객들도, 나도 자연과 인생이 하나 되어 한평생 흙에 바친 삶을 사시는 한 여성 농부의 삶 앞에 경건해지고, 숙연해졌다.”는 후일담이 있었다.

이러한 문학에 대한 열정을 내적으로만 승화시킨 것이 아니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천년학’세트장인 초가집 주변에 고금의 한국 명시 30여 편이 바위에 새겨진‘문학동산’이 있다. 그곳에는 정채봉, 박태상, 최산두, 무진기행의 김승옥, 주동우, 안영, 윤동주, 황현 등 광양과 관련이 깊은 문학인들의 시를 육중한 화강암에 새겨 놓았다.

정채봉의 엄마 잃은 오누이의 이야기를 그린‘오세암’의 주인공인 누이와 동생이 노니는 모형상과 작가의 암각상이 그 중심에 있다. 그리고 법정스님이 즐겨 선을 했다는 바위터 등을 상징적으로 표시해 놓았다. 여기 문학동산을 중심으로 청매실농원은‘다모’그리고‘토지’, 영화‘북경반점’과‘취화선’등 12편의 영화와 드라마 배경지로 유명하다.

 

 

조선 토종 어머니로 맺은 인연의 넓이
청매실농원은 대통령부터 연예인, 유명 작가들이 찾아와 머무르고 가는 명소이기도 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물론이고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까지 이곳을 찾았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섬진강 물안개가 올라오는 한 눈에 보이는 이곳을 참 좋아하셨단다.
“일 년에 이곳에 찾는 사람들이 150만 명이 넘어. 나는 옛날부터 인간 지남철, 인간 종착역이 소원인 기라.”라며 찾아오는 손님은 누구를 막론하고 반갑게 맞아준다. 오직‘농사꾼’으로 일생을 살아온 비문명인이라서인지 마음이 넓고 인정이 많다.

지인에게 결코 빈손으로 보내는 법이 없다. 친정어머니 같다. 전형적인 조선 아낙네 심성 그대로 살아 있는 조선 토종이다. 홍 명인을 만나는 누구나 한결같이 고향집을 찾아온 듯, 친정집을 찾아온 듯 편안하고 안락함을 느낀다고 한다.

홍 명인은 2012년 6월 28일 방송된 KBS 2TV‘여유만만’에서와 금년 8월 30일 방송된 MBC‘사람이 좋다’에서 고두심 이미숙과 같은 배우들과 돈독한 면모를 과시했다. 고두심은“홍쌍리가 해준 밥상을 보면 엄마가 옛날에 해주던 밥상이 떠오른다”고 했다. 이여 김혜영은 “신장병 투병 당시 매실물을 많이 마셨다”면서 어머니 같은 분이라고 했다.

또한 배우 최불암은‘한국인의 밥상’을 촬영하고 돌아가는 길에‘마치 내 여동생을 뒤로 두고 떠나는 것 같은 애잔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 인연으로 문학동상에‘최불암’암각상이 새겨져 있다. 최란은 KBS 2TV‘스타 인생극장’에 출연하여“15~16년 전에 광양 매화밭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는데 그때 처음 인연을 맺었다”고 했다. 그 외 배용준과 유열과 같은 연예인은 홍명인을‘어머니’라고 부르며 따른다.


격을 갖춘 상차림‘엄마의 밥상’

홍 명인은 평생을 고된 농사꾼으로 살다보니 갖가지 지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20대에 두 번이나 암 수술을 받았고, 30대에는 류머티즘으로 2년 7개월이나 목발에 의지해야 했다. 교통사고로 7년 동안 등이 굽은 채 생활하는 시련도 있었다. 이러한 시련을 이겨내게 한 것이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토종밥상과 매실요법과 각종 자연요법을 결합한‘엄마의 밥상’이었다.

거기에 차려지는 반찬은 파김치, 부추김치, 총각김치, 백김치, 동치미, 고들빼기김치, 민들레 김치 등 종류만도 10여 가지가 넘는 산야초이다. 그 외 강조하는 것은 푸른 잎사귀들이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먹으면 장수해 장생초라고도 불리는 쇠비름이다.

그리고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 있는데,‘매실 비빔국수’이다. 매실 비빔국수는 매실로 직접 담근 매실 고추장과 매실 원액을 이용하며 미나리와 매실 장아찌가 더해진다. 거기에 순두부와 함께 버무려낸 톳나물, 도토리묵을 내놓는다.

아삭아삭한 매실 장아찌와 매콤새콤한 매실 고추장의 풍미가 배인 매실 비빔국수의 맛은 가히 일품이다.
10년 숙성의 매실주도 한잔 곁들여지면 금상첨화이다.매실된장과 수육의 조화로움도 대단하다. 홍 명인은 온산에 자생하는 이파리를 주섬주섬 뜯어와 볼이 미어지도록 먹고 사는 게 진정한 우리네 식탁이라 했다.

그리고 또 중요한 밥상은 그 사람의 성품이나 체질에 따라 제격에 맞은 상차림을 한다. 이를 테면 법정 스님의 밥상은 대쪽 같은 당신 성품에 딱 맞게 은수저를 놓고, 하얀 그릇에 땅콩죽과 백김치를 내놓는다. 땅콩죽은 보통 닭백숙 삶은 물에 끓이는데, 스님 밥상은 땅콩만 곱게 갈아 묽게 쑤어 올린다.

정채봉 작가에게는 서대 생선구이, 콩장, 온갖 풀이파리가 다 들어간 매실액기스로 무친 겉절이, 부추전으로 차린 밥상을 내놓는다. 부추전은 홍합과 재첩, 바지락 세 가지 조개에 청량고추, 부추, 양차, 당근, 마늘 등 갖은 채소를 다져 넣고 밀가루를 개는데, 늘 멸치 다시마 국물에 개어 구수한 맛이 나게 한다.

‘뿌리 깊은 나무’의 발행인 한창기 사장님 차림은 또 다르다. 항아리 뚜껑 같이 투박한 그릇이나, 손때 묻고 이가 나간 그릇에 담긴 상차림을 더 좋아한다. 밭에서 나는 것보다 가죽이나 응개 같은 반찬을 정갈하게 차려 놓는다. 오히려 허허 웃으시며“밥상이 작품이다!”라고 한다. 밥상이 화려해서가 아니라, 짜고, 맵고, 쓰고, 시고, 떫은 오만가지 맛이 다 들어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배용준이 여행에세이‘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홍 명인의 어머니의 밥상을 그의 여정의 첫걸음으로 삼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꽃들에게 희망 걸기
홍 명인은 26년 전부터 야생화 천국을 조성해 놓았다. 상사화 2000여 송이를 비롯해 구절초, 초롱꽃, 민들레, 금낭화, 자운영, 맥문동, 벌개미취, 목단, 도라지 등 61종의 야생화를 3만평 넘게 심었다.

사계절 꽃이 피‘살아 있는 섬진강변’을 만들고자 했다.“그래서 몸이 안 좋은 사람, 마음이 안 좋은 사람이 찾아왔다가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돌아가면 좋겠데이. 도시민의 어둡고 괴로운 마음을 전부 부리뿔고 돌아갈 수 있다믄 더 없는 낙원이 될 끼제.”

홍 명인은 일을 하다 싫증이 나면 꽃반지를 만들어 끼고 노래를 부른다. 그가 즉석에서 작사 작곡한 노래다. 그럴 때면 눈물이 주륵주륵 흐르곤 한다. 자연은 노래가 되었고, 시가 되기도 한다. 아침 산에 오르면 딸들은 엄마에게“나 좀 봐도”라고 말하고, 손으로 톡 건드리면 기분 좋아 몸을 떤단다.

“내 고달픈 몸과 서러운 마음을 세상에 붙잡아 준 것이 꽃이었지예. 꽃이 아니면 난 진즉 죽었지 싶으예. 꽃이 맺어준 좋은 인연 덕분에 도타운 정 나누며 부질없는 세상에도 정답게 살고 있지예.”

꽃이 질 때는 그냥 가는 게 아니란다. ‘내년에 올 때까지 아프지 마라, 울지 마라.’그러면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지는 기지. 내 자식들은 바쁘면 찾아오지 않지만, 내 새끼(꽃)들은 눈만 뜨면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좋아해 줘. 딸들이 많다 보니 나는 늘 열아홉 살 바람난 가시내 같아. 아직도 문학소녀 같은 감수성과 심성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사랑스런 꽃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 때마다 써놓은 시들이 수 백 편이란다. 그 시들을 엮어 금명간 시집을 출간할 예정이라니 사뭇 기대된다.

최근 홍 명인의 삶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인생은 파도가 쳐야재밌제이’다. 현직 영화·뮤지컬제작사 대표인 김도혜가 엮은 것이다. 힘들 때마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써놓았던 편지와 일기 그리고 시와 함께 삶의 이야기를 담아냈단다.

홍 명인의 속 깊은 이야기를 만나보면 진정으로 흙을 사랑했던 삶에 대해 이 글보다 더 깊은 이해와 감동이 있으리라 믿는다.                     

광양문화연구원 박행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