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 <17>흙이 나를 빚는구나
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 <17>흙이 나를 빚는구나
  • 광양뉴스
  • 승인 2014.10.20 10:00
  • 호수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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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운요(白雲窯) 김 정 태 도공 -

 

 

인연

인연에 대해 생각한다. 기억에 어슴푸레한 사람을 갑자기 만났을 때, 그 만남으로 옛사람들이 새록새록 떠오를 때, 끊어지지 않는 연(緣)줄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8월 31일, 아픈 무릎 때문에 광문연(광양문화연구회) 모임에 나가지 못하고 옥룡면에 있는 백운요를 찾았다.
세 번째 원고를 넘기려면 시일이 촉박하였다. 들어가는 입구와는 달리 백운요는 아담하고 아늑하였다. 비좁은 동굴 입구를 거쳤더니 안에 너른 광장이 있는 느낌이랄까? 체험장에서 만난 안주인에게 찾아온 연유를 설명하였다. 남편이 출타중이니 전시관에서 차나 한 잔 하시라고 하였다. 다실의 정취가 한껏 묻어나는 조촐한 전시관이었다.

전시관 바람벽에 <흙이 나를 빚는구나>라는 글이 눈길을 끌었다. 흙이 나를 빚는구나 -흙을 주무르며 사는 사람, 흙에 빠진 사람이 할 수 있는 말 중 가장 멋진 표현이 아닐까.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 그 인간이 흙을 만져 생명을 불어넣으며 흙이 나를 빚는구나, 라고 말한다. 흙이 희로애락을 빚는구나로 읽히기도 하였다.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백운요 도공한테 신뢰가 갔다.

“제가 도자기를 좋아합니다. 제 친척 중에 하동요에서 도자기 만드는 분이 계시는데요.”
“네?”
“하동요 정웅기씨가 당숙 되십니다.”

그 말에 안주인은 사진을 보라며 한 쪽을 가리켰다. 당숙 사진이 거기에 있었다. 그렇게 만났다. 좀 복잡하지만, 하동요 정웅기씨의 부친, 백운요 안주인 신효정씨의 할머니, 필자의 할아버지가 형제간이다. 그러고 보니 보면 볼수록 고모할머니를 쏙 빼닮았다.

 바깥주인 김정태씨는 도자기를 빚고, 안주인 신효정씨는 토우를 빚는다. 신효정씨가 만든 소녀상은 표정이 살아 있다. 바라보면 저절로 엄마미소가 지어지는 순수한 표정의 소녀들은 이웃집 순이 같기도 하고, 영희 같기도 하다.

본격적인 인터뷰는 다음을 기약하고 그렇게 돌아왔다.

 

 

흙여행

다시 백운요를 찾은 것은 추석이 지나고 초가을 냄새가 살짝 비치는 늦은 오후였다. 전화하지 말고 그냥 오시라는 안주인 당부(?)에 불쑥 찾아간 것인데, 김정태씨는 마침 마당가에 풀을 베고 있는 중이었다. 감기가 심한 필자에게 안주인이 깊은 감기에 좋을 거라며 고욤차를 우려 주었다.

터라는 것도 주인이 쓰기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걸까, 어떻게 이곳에 터를 잡았는지 물어 보았다.이곳저곳 돌아다녀 보았는데, 바라볼 수 있는 산이 우선 마음에 들었고, 가마를 앉히기에도 좋았고, 작은 동산도 옆에 있어 눌러앉게 되었다고 하였다.

무슨 이야기를 물을까, 고민스러울 사이도 없이 김정태씨는 편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받아 적느라 수첩 넘기는 손이 바쁠 뿐이었다. 봄에 농사가 시작되기 전이나, 가을 추수가 끝난 뒤에 흙 여행을 떠난다고 하였다. 흙을 찾아 떠나는 여행인데,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도자기를 빚는 모티브가 되니 일거양득의 여행인 셈이다

일주일이나 열흘 동안, 비박도 하고 때로는 지인의 집에서 묵기도 하는데, 주로 경남 지방으로 많이 떠난다고 하였다. 하동, 남해, 산청, 등등. 산기슭이나 절개지, 도자기 파편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나만의 흙을 찾는 재미에 빠진 도공의 모습이 그려졌다.
김정태씨가 도자기 파편 하나를 들어 보인다.

“이것은 남해에서 발견했는데요. 보시는 대로 얇고 가볍지요. 어느 정도 숙련된 도공이 만들었구나하고 짐작을 하게 되지요. 강진 청자요가 없어지고, 아마 그 도공들이 남해로 흘러들지 않았나하고 추측을 해봅니다. 강진 청자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파편이 흩어져 있는 곳을 파헤쳐보니 6칸 정도의 가마터가 나오더라고요. 그 가마 안에 켜켜이 쌓여진 채로 무너져 내린 도자기들이 보였어요. 1200~1300도의 불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것 같았어요. 애써 만든 도자기가 무너져 내렸을 때 그 도공의 심정이 어땠을까, 가슴이 저려옵디다. 그 옛날의 도공과 지금의 내가 그렇게 만나는 거지요.”

얼핏 도공의 막막한 눈물을 보는 듯도 싶었다.

 “제 도자기는 남자 그릇, 여자 그릇이 있습니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을 형상화 하는 작업에 푹 빠져 있다고 하였다. 겉모습은 산적 같지만, 속이 한정 없이 여린 사람을 만난 후에는 겉은 거칠고 질박하게, 속은 아주 부드러운 그릇을 만든다고 하였다. 거창에서 만난 그 사람은 만담을 하는 분이라고 하였다. 굵은 목으로 수비를 한 흙으로는 소박한 농부를 담아낸다. 김정태씨가 소녀처럼 여린 다완(茶碗) 하나를 보여줬다. 열일곱 처녀 같은 다완(茶碗)이었다.

 

 


 “예전에는 내가 흙을 빚는다고 생각했는데, 작업을 하면 할수록 흙이 나를 빚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흙을 찾아다니는 과정, 수비하고 혼합하고 숙성시키는 그 긴 시간들이 흡사 구도와도 같다고 도공은 말하였다.

이야기를 이어 갈수록 참 섬세하고 여린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 감잎에서 초록색, 분홍색, 주황색, 하늘색을 볼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랴. 그는 또 제비꽃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그 천생 예술가인 도공은 흙의 고유한 색과 성질을 끄집어내기 위해 자연유약만 쓴다고 하였다. 도자기를 빚는 일은 흙의 고요함을 끄집어내는 일이란다. 마당가 작은 풀꽃이 다른 꽃들과 어울리며 빚어내는 조화로움에서 작품의 또 다른 모티브를 얻는다는 도공.

그러나 도자기만으로 생활이 가능할까. 부부는 같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생활자기를 만드는 일도 방편 중의 하나이다. 전통물레로 그릇을 빚는 일은 김정태씨가 맡고, 토우를 빚거나 집 옆에 지천으로 피어난 풀꽃을 알려 주는 등의 일은 신효정씨가 맡고 있다. 체험을 통해서 우리의 도자문화를 알리는 전도사 역할이 그들에게 주어진 일이라 했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해졌다는 부부. 그저 풀칠할 정도면 족하다고 웃는 부부의 얼굴에 그늘은 없었다. 아이들에게 흙의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자연과 가까워지게 하는 일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부부. 그들에게서 ‘삶의 시간’은 느리고도 풍요롭게 흘러가는 듯싶었다.

 

 

수행

“그런데 도자기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하동요 삼촌 집에 드나들면서 가끔 일도 거들고, 장작도 패고 했는데, 어느 날 흙이 나를 사로잡아버렸어요. 도자기를 빚고 싶다고 했더니 삼촌이 만류하시더라고요.‘어렵고 힘든 길이다, 하지 마라.’ 몇 번을 뿌리치셨어요. 끝끝내 해야겠다고 하니까 허락을 하시더라고요.

흙공부 부터 장작 쪼개는 일, 장작 쌓는 일, 기본부터 매섭게 가르쳐 주셨어요. 그런데 성형만은 가르쳐주시지 않았어요. 그저‘이건 전이 두껍다, 얇다. 굽이 너무 높다, 낮다.’제가 빚어간 작품에 대해서만 평가할 뿐이었어요.

아마 네 스스로 깨쳐 보아라, 이런 의도가 있으셨던 것 같아요. 어렵게 습득한 것이 오래 간다는 것을 가르치신 거지요. 그런데 자주 찾다 보니 삼촌의 작품이 기준이 되어버리더라고요. 내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래서 찾아뵙는 것을 자제하고, 늘 조심하려 합니다.”

 혹시 이 길을 걸으면서 후회나 갈등 같은 것은 없었냐는 질문을 해 보았다.
“도자기를 시작하고 5년쯤 지났을 거예요.‘흙이 뭐야? 역사가 뭐야? 너는 도대체 뭐야?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1년 가까이 혼돈의 시간을 보냈지요.”

 도자기를 빚는 일은 수행과도 같다고 한다. 봄에 캐온 맑고 고운 흙을 물에 가라앉혀 체에 거르고, 숙성시키는 일, 보통 숙성기간만 해도 3~5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발효의 시간을 거친 흙을 주물러 성형을 하고 가마에 앉힌 후에는 불을 들인다. 약한 불일 때는 참나무를 쓰고, 고온이 시작될 때는 소나무를 쓰는데, 소나무는 화력이 좋고 재가 없어 불땀이 고루 밴다고 하였다.

 “성형을 할 때는 흙과 물레와 내가 혼연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망상이 끼어드는 순간 찻사발도 어그러져 버리지요. 초저녁 일찍 잠에 들어 밤 열시부터 아침까지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이 흙 속에 나의 길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작업장으로 가는 곳, 한편에 비닐에 덮인 고운 흙이 있었다. 흡사 여성의 얼굴에 바르는 파우더처럼 미세하고 뽀얀 그 흙이 고령토라고 하였다. 고령토는 점성이 없어 찰진 흙을 섞어 쓰게 되는데, 다른 흙을 얼마나 섞느냐에 따라 여러 색을 가진 그릇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비슷한 것 같아도 저마다 다른 형태와 무늬와 색을 가진 다기들. 아직은 마음에 흡족한 작품을 얻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는 도공한테서 겸손과 치열함이 느껴졌다. 마음자리가 반듯한 사람한테서 보이는 끝없는 정진의 자세가 부러웠다. 범인(凡人)은 여건을 탓하며 상황에 안주해버리는데, 그 것을 뛰어 넘는 사람만이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 주는 시간이었다.

기침을 하는 필자에게 도공은 이런 말을 하였다. “팔목을 많이 쓰다 보니까 팔목이 시큰거리고 아플 때가 있어요. 그럴 때 팔목을 만져 주면서 ‘네가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이구나! 라고 달래고 쓰다듬어 주면 신기하게도 통증이 좀 가시더라고요.”

백운산 바구리봉이 이마받이하고, 옥룡 뜰이 제법 널찍하게 펼쳐져 보이는 곳. 백운요 김정태씨는 다가오는 가을, 가마에 불을 댕기기 위해 흙 삼매경에 빠져 있다.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찾아낸 도공의 얼굴이 맑고 고요하였다.

정은주 광양문화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