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 <16> 한 장의 사진은 영원한 역사이다
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 <16> 한 장의 사진은 영원한 역사이다
  • 광양뉴스
  • 승인 2014.10.13 09:50
  • 호수 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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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윤식 사진작가 -

광양에 국보급 사진작가 한 분이 계신다. 기독교와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희귀한 사진뿐만 아니라, 우리 지역 변천사 등 귀중한 자료들을 대량으로 제작하신 분이시다.

특히 사진 자료들은 직접 헬기를 타고 항공 촬영하거나 선박, 렌터카를 총동원하여 하늘과 육지, 바다에서 입체적으로 조망한 것들이라서 그 기록가치가 더욱 높은 것들이다.

그 분은 18살 때부터 사진을 시작해 소위“사진 한 장의 힘은 천 마디의 말보다 더 강하다.”라는 신념을 믿고‘카메라에 미친 사람’으로 통하는 신윤식 작가이시다.

그는 필리핀대학교 예술대학 응용사진학 연수,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캘로그칼리지 리더십과정 연수, 조선대학교 최고지도자과정 등을 이수했다.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 (사)전남영상위원회 위원,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운영이사, 전광일보 기획취재 본부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제27회 전라남도미술대전 사진부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미술대전에서 수차례 수상 경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그는 그렇게 촬영한 사진들을 마냥 모아두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모두 책으로 엮고자 했다. 그래서 광양시 역사 사진집인《햇빛 고을 광양》이나, 24년여 동안 세계 27개국을 돌아다니며 모은 한국교회의 역사와 유적지의 사진을 담은《성지의 세계(전3권ㆍ한국사진선교센터)》와《KOREAN CHURCH POWER》 등 귀중한 역사 자료집을 출간했다.

그리고 그 사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우리의 민족 시인인 윤동주을 집중 탐구하여 모아 엮은《민족저항시인 윤동주, 세상 밖으로》라는 책은 이미 가편집이 끝낸 상태이다.

또한《한국인의 고향 남도(전남 22개 시·군)》와《한국인의 고향(남중권) 관광사진집》, 《세계기독교 역사(예루살렘에서 오늘의 한국교회까지)》등 남들은 한 권도 제작하기 힘든 일들을 부지기수로 진행하고 있다.

거인 이경모 선생을 만나다

무엇이 이토록 열정적인 작업에 몰두하도록 하였을까?

“신군은 광양의 변화하는 모습을 꼭 기록해 두게.”

그는 우리나라 사진작가의 거인 이경모 선생님으로부터 사진을 배우게 된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한다. 이경모 선생은 광양 출신으로, 우리나라 보도 사진계 거목이시다.

평생 모은 카메라가 1,500여점. 지금은 나주 동신대학교 영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좀 더 혜안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면 우리고장 광양에 유치할 수 있는 귀중한 보물이었다.

“이경모 선생은 1945년 해방 때부터 6·25전쟁 등 격동기의 대한민국의 현장을 생생하게 담으셨지만, 저는 1970년대부터 이후부터 광양의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해 보고 싶었습니다.”그러던 그의 꿈이 어느 새 세계 기독교의 뿌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가 1996년 세계 기독교 성지의 모습을 사진에 담은《성지의 세계》를 냈을 때 개신교계의 반응은 뜨거웠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헬기를 타고 직접 촬영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성지순례 사진집이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조선 말기에 전래된 교회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귀한 사진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장가치까지 매우 높은 사진 자료집이었다.

“지난 90년부터 성지순례를 시작했는데, 이스라엘, 이집트, 터키, 그리스, 로마 등 23개국을 돌며 기독교 성지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한국출판문화상도 수상하고 이스라엘 국제도서박람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함께 《KOREAN CHURCH POWER》라는 총 7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1, 2권으로 나눠 편찬하였다. 지난 15년간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호주, 캐나다,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들을 돌며 기독교 관련 유적지와 교회들을 카메라에 직접 담은 내용이었다.

제1권은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역사를, 제2권은 기독교 관련 유적지와 선교지를 중심으로 다루었다. 하멜에 앞서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벨트브레로부터 일제치하와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순교자들의 처형 장면 등 역사적으로 희귀한 사진들을 많이 수록했다.

위기는 기회를 만든다

하지만 이 책은 당시 IMF까지 겹치면서 그를 최악의 사태로 몰고 갔다. 애초 이 책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로부터 2,000부를 주문받아 제작하였다. 그런데 사정이 생겼다면서 200부만 인수하겠다는 것이었다. 2억 2천이 넘은 출판비를 이미 지급한 상태라서 고스란히 빚으로 남고 말았다. 파산이었다.

“그때 집까지 날리게 되면서 급기야 자살까지 생각했습니다.”

믿음이 배신으로 변한 분노와 경제적 문제 등의 압박감에 시달리니 마침내 몸 왼쪽 부분에 마비증상이 생기고 기억상실증이 찾아왔다. 마음의 병이 육체의 병으로까지 나타났다. 심한 우울증까지 겹쳐왔다.

그런데 그런 절망감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광양 모 금융기관에서 예식장을 건축하였는데 이를 위탁받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일은 기적에 가까운 일, 아니 오로지 온 가족의 기도 덕분이었지요.”

아직 몸이 불편한 관계로 집에서부터 일터까지 16Km를 자전거로 오고갔다. 신경마비증상이 심한 상황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지만, 아직 경제적 사정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제 막 시작한 사업이라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여수애양병원장님을 찾아갔다. 병원장님께서는 큰 걱정 안 해도 되겠다면서, 주사 놔주고 며칠 분의 약을 지어주셨다. 정말 기적처럼 치료되었다.

기적은 또 찾아왔다.

포항중앙교회에서 교회 설립 60주년 기념집을 만들겠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준비한 자료로《예루살렘에서 포항중앙교회까지》라는 제호의 책을 만들기로 했다. 그 예산이 공교롭게도 이전에 진 빚의 액수와 똑같은 금액이었다. 과연 기적이었을까? 일이 이렇게 풀려지자 오히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 덕분에 그 많은 사진 자료를 확보할 수 있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가 특히 기독교의 역사에 집중하게 된 계기 또한 극적이다. 1997년도에 사진 동호회를 이끌고 충무 갈매기섬에 사진 촬영을 가다가 조난당하고 말았다. 하루 낮과 밤을 표류하는 과정에서 살려주면 하나님의 역사에 한 생 다 받치겠다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 기도의 덕분이었을까? 마라도 남쪽 17마일 해상에서 해양경비정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조되었다. 생사를 넘어온 그 기도를 실천하기 위해 기독교 다큐 사진집 제작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민족저항 시인 윤동주에게 빠지다

그는 유별나게 우리나라 저항시인 윤동주에게 깊이 빠져있다.“내가 윤동주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우리나라 기독교 전래 과정을 추적하던 중, 중국 길림성 용정에서 윤동주 시인을 만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이런 훌륭한 시인들은 더 높이 드러내어 후손대대 민족의 위인으로 삼아야 합니다.”

특히, 윤동주 시인의 유고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우리 고장 망덕에서 보관되었다가 빛을 보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건까지 알고 있는 입장에서, 당신이 이 일을 꼭 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발로 뛰면서 윤동주에 관한 자료를 최대한 모아 전광일보에‘윤동주, 세상 밖으로’라는 특집 코너로 20회를 연재했다. 이를 다시 책으로 엮으려고 준비한 것이《민족저항시인 윤동주, 세상 밖으로》이다. 이미 다 마무리해서 가제본이 된 상태이다.

지난 해에도‘광양전어축제’때 윤동주 시인을 보다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소장 자료들을 공개하는 전시회를 열었다. 그 후 상시 전시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유고집이 보관되었던 광양망덕 옛 정병욱 가옥에‘윤동주 기념관’을 짓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해 안타까움이 많다고 했다. 그래도 반가운 일은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도 팔을 걷어 부치고 적극적으로 돕기로 했다.

윤동주 시집 원고를 보관했던 정병욱 교수가 다름 아닌 이어령 박사의 스승이란다. 그리고 천우신조로 호주에서 살고 계시다 지난해에 별세하신 윤동주 시인 친 여동생 윤혜원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 동안 작업한 일을 우연히 전해 듣고 꼭 만나고 싶었다면서 광양에까지 찾아오셨단다. 정말 극적인 만남이었다. 그래서 모든 자료들을 확실하게 검증 받을 수 있었다.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는 또 남도의 모든 관광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한국인의 고향 南道》라는 책 발간까지 앞두고 있다.《한국인의 고향 남도 - 광양》이라는 책자도 준비하고 있다.

이 책 역시 그가 직접 촬영한 백운산의 사계절과 백운산 4대 계곡의 아름다운 풍경과 박현모(1880~1963) 선생의 광양10경을 담고 있다.

이 책에는 광양의 역사유적지와 특산품, 축제 등 광양의 역사와 관련된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광양을 중심으로 한 주변 관광지도 함께 소개할 예정이다. 특히 항공 촬영 사진이 많이 들어가 광양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이 치열한 프로정신에 입각한 산물이지만, 더욱 가치로운 것은 그간 역사적 사실이라 믿었던 내용들 중 일부는 그 진실성을 재조명해야 하는 단서를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기독교 역사와 관련하여 중요한 인물로서 이수정의 역할을 재조명해야 하는 것이라든지, 윤동주의 유고시집 발간 가옥이 현재 재현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인터뷰를 위하여 찾아가고자 전화를 드린 날도, 공교롭게도 남도지방을 항공 촬영하기 위해 헬기를 타러 가는 중이라 했다. 그처럼 틈만 나면 현장을 찾아가 촬영하니 그 사진들이 당연히 역사적 기록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국보급 다큐 사진작가 신윤식씨는 광양에 살면서, 내 고장을 유난히 사랑하면서,‘시대는 변해도 역사는 영원하다’는 믿음을 그처럼 치열하게 실천하고 있다. 그의 기록은 오늘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박행신 광양문화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