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 <15>‘붓’의 가락을 온몸으로 느끼다!
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 <15>‘붓’의 가락을 온몸으로 느끼다!
  • 광양뉴스
  • 승인 2014.10.06 13:16
  • 호수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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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서예의 선구자 토의 전종구 선생

 

토의 전종구 선생.

토의 전종구 엿보기?

토의 선생은 제철소가 설립된 후 1992년부터 광양에 삶의 터전을 꾸렸다. 포철기연 홍보실에서 7년여 동안 근무한 경력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당시 순천대학교에서 교수임용 기회가 있어 회사를 그만 두고 준비를 하던 중에 IMF와 함께 대학 사정으로 인하여 임용이 무산되었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전업 서예가로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90년대 들어 부동산 열풍이 불어왔으며, 사람들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져들게 되고 정신은 피폐해져 오로지 개인주의만이 이 땅에 정착하게 되었다”며 시대적 안타까움을 말한다.

“이러한 시대적 양상은 서구적 직선문화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며, 우리의 전통정서인 곡선문화의 정신을 이어 배려와 존중으로 상대에게 양보하는 문화를 이어가야한다”는 곧은 의지의 정신으로 곡선문화를 지양하는 예술인으로서의 절조를 지켜왔다. 그것은 예술의 불모지인 광양 땅에 서예라는 정신적 문화유산을 정착시키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는 전통서예가이기도 하지만 현대서예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왔다. 또한 현대서예의 서체를 광양에 뿌리내린 사람이다.

당시에 필자는 전통 서예에 관심을 갖고 익히던 때라 현대서예를 고집하던 그에 대해 많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갖게 된 때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전라남도광양평생교육관에서 한문 강사로 재직하던 필자는 서예 강사로 강의 하던 토의 선생과 만나게 되었다. 영웅호걸을 연상케 하는 외모만큼 그의 말투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화려한 겉치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나친 격식이나 형식에 치우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언론에 노출 되는 것을 부끄러워 한다. 어찌 이러한 그의 순박함이 사람들을 더욱 매료시키지 않으랴!
 28세에 최연소 대한민국서예대전을 졸업하고 작가로 우뚝 서다!

몇 해 전 네 번째 개인전을 찾아 비로소 그의 작품세계를 오롯이 엿보게 되었다. 28세의 어린 나이에 국전을 졸업하고 꾸준히 닦아온 그의 예술 세계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이다. 어쩜 그렇게 심오한 정신과 단아하고 강렬한 붓 터치를 연출할 수 있는 건지, 나도 모르게 온몸이 굳어버리는 듯했다.

작품이 아니라 그야말로 붓의 가락이 온 몸으로 퍼져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외적으로 풍기는 그의 외모와는 상반되게 다가오는 그의 예술세계를 통해서 또 다른 그의 매력을 엿보게 된 것이다. 그런 예술적 감각이야말로 전국에서 모여드는 많은 제자들로 하여금 젊은 그를 스승으로 섬기며 따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부 서예가!!

흔히들 사이좋은 부부들을 일러 ‘선남선녀 커플’이라고 칭한다. 토의 선생 역시 예쁘고 상냥한 아내 김숙경 선생과 함께 서예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그녀는 한글 서예가로 명성이 높다. 외모만큼이나 글씨 또한 단아하고 섬세하다. 어쩜 오늘의 토의 선생이 있기까지 성실하고 열정적인 김숙경 선생의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그녀는 동료 선생들에게도 늘 봉사에 앞장서는 사람으로 귀감을 사고 있다. 그리고 맘씨, 솜씨, 맵씨에 모두 능한 서예가이자 한 남자의 아내이며 세 아들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서예만 잘하는 게 아니다.
어선 사업을 하는 집안이라 전어가 팔딱이는 초가을이면 직접 회를 무치고 구이를 해서 많은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단체나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나 앞장선다.

현재 전라남도평생교육관과 주변 학교에 출강하여 제자들을 배출하고 있으며 인근 노인복지회관 등을 찾아 무료로 서예를 지도하고 있다. 잘나가는 남편의 그늘에 가리어 김숙경 선생의 글씨에는 관심이 쏠리지 않지만 그녀는‘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한국 여성의 전통적인 사고로 늘 남편과 함께 나서기를 꺼려한다.

그러한 그녀의 열정적인 내공은 사회에 활력소가 되어 언제나 주변인들의 삶을 기름지게 할 것이다. 또한 토의 선생과 함께 광양의 예술 발전을 위하여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보이지 않게 더 많은 업적을 쌓아가게 되리라!

시민들에게 1가정 1가훈 갖기 캠페인과 입춘첩 써주기

 

자손만대에게 훈계와 훈육의 글을 써서 거실에 걸어두고 집을 드나들 때마다 그 글을 새기며 가통을 잇도록 하는 것이 가훈이다. 그리고 입춘이 다가오면 각 가정에서 그 해의 행운을 바라는 글을 써서 잘 보이는 대문이나 거실 입구에 붙여놓고 한해의 길함을 염원하는 것을 입춘첩이라고 이른다. 몇 해 전부터 토의 선생은 아내 김숙경 선생과 제자들을 동행하여 시민들에‘가훈과 입춘첩 써주기’행사를 펼치고 있다.

광양시새마을금고의 후원으로 오래전부터 1가정 1가훈 갖기에 대한 토의 선생의 염원을 마침내 이루게 된 것이다. 3년 전에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40명을 추천 받아 가훈을 토의선생작품으로 제작하여‘家訓 展’을 치르게 되었고  시청 로비에 작품들을 전시하여 시민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광양시새마을금고에서는 토의 전종구 선생을 초대해 매년 입춘이 다가올 무렵이면 희망하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입춘첩을 받아가게 한다. 토의 선생의 글과 김숙경 선생의 글을 받으려고 줄을 서는 시민들도 있다.

필자 역시 그 때가 되면 토의 선생의 글씨를 받아 거실에 걸어두고 한 해의 안녕을 염원하는 습관이 생겼다.
좋은 글을 무료로 받을 수 있어 행운이며, 그 글을 한 해가 지나도록 걸어두고 볼 때마다 생기를 북돋울 수 있어 이중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 행복하다.

전남 동부 지역민으로는 처음으로 전남예총 회장이 되다!

전남예총은 창립 이후 계속 서부 전남 지역 출신이 예총회장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카리스마와 진취적인 그의 예술적 성향이 빛을 발하여 전남 동부지역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예총회장에 선임되었다.

그는 제10대 전남예총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편견으로 말미암아 두루 혜택을 보지 못했던 취약한 단체나 지역에 배려를 하며 전남 예술의 방향을 상당부분 바꾸기도 했으며 바꾸어 가고 있다. 형평성과 객관성에 맞춰 기쁨과 슬픔, 황홀함과 억울함 등이 조화를 이뤄내는 그야말로 전남예술인의 화합과 통일을 이루어갈 선구자가 될 것이라 믿는다.

또한 소외된 계층과 행복한 노년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행복한 노년을 위한 서예문화교실’을 열어 지역민들에게 서예문화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등 예술문화가 지역민과 함께 하는 것을 알리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새로 선출된 이낙연 전라남도지사 취임 후 인수위원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전남의 예술분야에 상당한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전남예총 회장으로 선출될 당시 그의 바람은 “점점 잊혀져가는 한국 고유의 전통을 살리고 창의적인 쇄신을 하는 온고지신을 바탕으로 전남예술을 발전시켜 나아가기 위하여 혼신을 기울일 것”이라는 약속을 했다.

토의 선생은 전통서예를 바탕으로 현대서예의 정착화 시켜 나가고 있는 예술인이다. 창작에 대한 그의 실험과 도전은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 그가 우리 지역에서 예술인으로 함께 살고 있다는 것 또한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광양에서 20년 넘는 수많은 세월 동안 지속해온 그의 예술사랑에 힘입어 젊은 후배들이 창의적인 작품 활동을 맘껏 즐길 수 있는 예술인의 고장으로 꾸준히 발전해나가기를 기대한다.            

백숙아 광양문화연구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