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 <14> 학생들의 끼를 모아 하모니를 만들다
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 <14> 학생들의 끼를 모아 하모니를 만들다
  • 광양뉴스
  • 승인 2014.09.29 09:49
  • 호수 58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양제철초 관악부 지휘자 팽 기 원 선생님

 

조만간 평균 수명 상수(上壽, 100세) 시대가 된다. 그래서 인생의 반환점 오십 고개를 넘은 사람들은 정년 이후 새로이 시작되는 삶에 관심이 많다.

아르바이트도, 취미 생활도, 봉사 활동도 계획해 보지만 60세 전후에 퇴직하고 남은 40여 년은 그리 짧은 세월이 아니다. 정년 이후에도 현직 때처럼 전문성을 살려 의미 있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면에서 팽기원 선생님(1944년생)은 복이 많은 분이다.

 

광양제철초 관악부 연습장면.

 

인생은 정년퇴임부터다
팽 선생님은 초등학교 교사로 2006년 정년퇴임을 한 이후 더 바쁘다. 왜냐하면, 현직 때부터 담당했던 광양제철초등학교 관악부를 계속해서 지도할 뿐만 아니라, 2009년부터는‘광양 청소년 관현악단’을 창단하여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방학에도 쉬지 않고 2주간 광양제철초등학교에서 관악부 음악캠프를 열었다. 8월 초순 어느 날, 필자가 광양제철초 관악부 연습실을 방문하였을 때 많은 인원과 악기들의 규모에 깜짝 놀랐다.
넓은 관악부실에서는 4~6학년 학생들이 팽 선생님의 지휘 아래 정기 연주회 곡 연습을 하고 있었고, 바로 옆 체육관에서는 이제 막 입문한 3학년 학생들이 관악부 졸업생들의 도움을 받아 악기 파트별로 연습을 하고 있었다.

관악부 운영은 젊은 사람도 힘에 부칠 만큼 복잡하고 초인적인 능력을 요구한다. 광양시 행사 연주와 각종 대회에 나갈 때는 대형버스 몇 대에 악기와 아이들을 가득 태워야 한다. 그 많은 악기 관리와 매일 이어지는 연습 지도는 기본이며 ‘간식부터 등하교까지’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 그야말로 혼자서 북 치고 나팔 불고 정신이 없다. 이렇게 더운 여름날 음악 캠프로 흘린 땀을 모아 8월 15일에는 광양제철초 죽림관에서‘한여름밤의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였다. 연주하는 학생들도, 지휘하는 팽 선생님도, 관람하는 가족과 이웃도 모두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였다.

학생들은 많은 관객 앞에서 연주하는 자신이 너무 자랑스럽고, 팽 선생님은 천방지축을 모아서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었다는 자긍심이 가득하고, 부모들은 개구쟁이 어린 자식들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선율이 너무 신기하기만 하다. 여름밤은 음악회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흐뭇함과 함께 깊어갔다.  

 

 

2011년 독일, 오케스트라 방문 유럽 연주회.

독일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다

지난 8월 18일에는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초청으로 백운아트홀에서‘독일 작센유스윈드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있었다. 작센유스윈드 오케스트라는 14세부터 27세까지의 재능 있는 뮤지션으로 구성된 독일 최고 수준의 관악단이다.

이번 연주회가 광양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은, 2011년 팽 선생님이 지도하는 광양제철초등학교 관악부 54명이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유럽 연주회를 간 것이 인연이 되었다. 팽 선생님은“당시 독일에 머무르는 동안 프랑켄베르그 시로 부터 숙식을 제공 받았는데, 그때의 은혜를 갚게 되는 기회가 되어 마음의 짐을 덜게 되었다”고 전했다.

이번 작센유스윈드 오케스트라 연주를 통해 음악의 문외한인 필자도 클래식의 고향인 독일 음악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다. 특히, 연주 후반에는 팽 선생님의 제자들인 광양제철초 학생 10명과 중학생 7명이 협연을 하게 되어 더욱 의미가 깊었다.

독일 팀과 협주 준비 막간에 무대 뒤에서 공연 뒷바라지에 한창인 팽 선생님을 만나려는 순간, 공연 대기 중인 한 초등학생이 선생님을 급히 찾았다.“선생님, 제 악기가 없어졌어요!” 팽 선생님은 입으로는“네 악기를 나보고 어떡하라고!” 고함치면서, 발은 이미 악기를 찾아 총총걸음으로 달려가셨다. 필자는 저 멀리 사라지는 팽 선생님의 뒷모습을 존경의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돌고 돌아 광양으로 오다

팽 선생님은 경북 문경 출신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은 충남 천안에서 보냈다. 이후 공주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19살의 나이에 서울의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교직 복무 중 음대에 진학하여 피아노를 전공하고 바이올린을 부전공하였다.

음악과의 기나긴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서울의 여러 초등학교에서 30여 년간 밴드를 지도하며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높였으나 개인적으로는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며 홀로 아들을 키워야 하는 아픔도 있었다. 그러던 중 1991년 포스코 교육재단 광양제철초등학교에 부임했다.

한반도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고 돌아 드디어 남녘 광양으로 오신 것이다.

이때부터 고희의 나이를 넘긴 지금까지 24년째 광양제철초 관악부를 지도하고 계신다. 그 중간에 2006년 정년퇴임을 하였지만 정열적인 지도는 계속되었다. 그 덕분에 광양제철초 관악단의 연주 실력은 세계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지난 2012년 광양제철초 관악부는 제주도에서 열린 제2회 국제U-13관악경연대회에서 대만의 건강국민소학관악단과 경합을 벌인 결과 공동 금상을 받았다. 또한, 팽 선생님은 초대‘고봉식 관악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팽 선생님이 정말로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상이 아니고 공연이다. 광양제철초 관악부를 맡은 이후 매년 12월 한해도 거르지 않고 정기연주회를 한 것이 23년째이고, 광양청소년관현악단의 정기연주회는 4년째다. 광양시 각 학교와 병원, 불우아동시설을 방문 연주하는‘찾아가는 음악회’가 지난 3년간만 15회다.
진정한 음악인의 길을‘공연’으로 보여주신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업적은 본인이 아닌 광양제철초와 광양시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감사함의 표시를 잊지 않으셨다.

관악부를 계속 지도하고 싶다

팽 선생님은“관악부 지도를 통해 같은 취미와 적성을 가진 학생들의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보람 있고”또 “자라나는 학생들의 끼를 발견하는 순간이 가장 즐겁다.”고 하였다. 실제로 관악 합주는 다양한 관악기, 타악기, 현악기가 어우러져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 내는 화합의 과정이다. 그래서 팽 선생님은 “학생들이 관악부 합주를 통해 단지 음악적인 소질 계발이 아닌 타인과의 소통 및 협력, 책임감 등의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고 하였다.

고희를 넘긴 팽 선생님의 꿈은 소박하다. 오직 광양제철초 관악부의 역사가 계속 이어나갈 수 있기를 소원한다. 현재 광양제철초는 학생 수의 급감으로 전교생이 참여해야 겨우 관악부를 유지할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이다.

일부 극성 학부모들은 자녀의 특정 악기 연주를 고집하여 이를 조정하기도 갈수록 힘이 든다. 모든 악기는 똑같이 소중하다고, 자신의 능력과 소질에 맞는 악기 선택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도무지 듣지를 않는다. 그래도 필자는 확신한다, 팽 선생님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팽 선생님은“어린 학생들에게 영수 선행 학습을 시키는 것은 피 말리는 소모전이다. 어릴 때‘1인 1악기’를 배우는 것은 평생 음악과 함께 아름답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한다”고 힘주어 강조하신다.

음악과 아이들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 존경스럽고 부럽다. 100세까지 건강하게 광양의 학생들 곁에서 음악과 함께 하시길 기원한다.
이은철 광양문화연구회(광양제철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