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 6]양보와 감사속에 피어나는 따뜻한 사람 냄새
[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 6]양보와 감사속에 피어나는 따뜻한 사람 냄새
  • 광양뉴스
  • 승인 2014.07.21 09:32
  • 호수 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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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와 조이’ 나라의 주인공 복향옥

하조나라 문패.
봉강면 성불사 아래 첫 번째 마을에 ‘하조나라’라는 예쁜 펜션이 있다. 하조마을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하조’가 무슨 뜻일까? 봄철에 남쪽에서 날아와 여름을 보내고, 가을에 다시 남쪽으로 날아가는 철새를 하조(夏鳥)라 한다.

여름철 성불계곡으로 놀러 오는 행락객이 쉬어가는 펜션 이름으로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펜션 입구의 문패를 보니, 하조는‘하모니(Harmony) & 조이(Joy)’의 줄임말이다. 그 이름의 세련됨이 놀랍다.

복 씨네 4자매, 하조마을에 둥지를 틀다

하조나라 펜션의 안주인은 복향옥 씨다. 복 씨는 광양으로 내려오기 전, 경기도 파주시의 통일동산에 살았다. 임진강 너머로 북한이 바라다보이고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작업장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헤이리 예술마을과 유럽의 한 마을을 재현한 영어마을, 역시 이국적인 분위기의‘프로방스’가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서 날마다 새로운 추억을 쌓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주말이면 외지 차량으로 몹시 붐비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러던 중 순천에 살던 큰 언니네가 하조마을로 이사를 했다. 큰언니는 읍에서 법무사로 일하는 형부 바라지와 시골 아낙으로 사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여행 삼아 두세 차례 놀러 오면서 큰언니의 즐거운 전원생활에 반해 복 씨의 남편이 먼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복 씨 부부는 마침 매물로 나온 계곡의 산장을 구입, 펜션을 운영하게 되었다. 3년쯤 후에는 일본에서 지사 생활을 마치고 입국한 둘째 언니네가, 다시 3년쯤 후에는 영국에서 허브와 아로마테라피 연구에 오랜 세월을 보낸 셋째 언니가 내려왔다. 현재 둘째 언니는 마을 체험관 운영과 관리를 맡고 있으며, 셋째 언니는 허브 정원을 조성 중이다. 이렇게 복씨네 4자매는 광양 봉강면 하조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하조나라 김세광·복향옥 부부.

광양 출신 이균영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다

복 씨는 처녀 시절에 방송국 작가로 활동하였다.‘임국희 여성 살롱’의 보조 작가를 시작으로‘이종환의 여성시대’, ‘김현철의 디스크 쇼’ 등 다수의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였다. 생방송 오프닝 원고를 쓰기 위해 하루하루를 땜질하듯 겨우 버티던 어느 날,

‘김현철의 디스크 쇼’를 공동 제작하던 시인 선배를 만나러 동숭동 파랑새극장 커피숍으로 갔다.
그곳에서 광양 출신의 사학자이자 소설가인 이균영 씨를 처음 만났다. 선배와 합석해있던 이 씨가 복 씨를 좋게 보고 대학 후배 김세광 씨에게 소개해 주었다. 물론 이 씨의 고향이 광양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고, 이것이 복 씨 가족이 머나먼 남쪽 나라 광양으로 내려오는 인연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처럼 복 씨의 결혼과 광양 정착에 결정적 기여를 하였던 이균영 씨는, 광양 출신의 역사학자 중 필자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좌우합작단체인 신간회 연구의 권위자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어두운 기억의 저편>이라는 소설로 더 잘 알려진 문학가이다. 한마디로 학계와 문단에서 모두 인정을 받는 분이었는데, 안타깝게 1996년 45세의 젊은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타계하였다.

하조나라 펜션의 안주인이 되다

 ‘하조나라’라는 펜션 이름은 남편 김 씨가 지었다. 물론 마을 이름이‘하조’인 것에서 따왔지만,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이라는 책에서 힌트를 얻어 스토리텔링하였다.

토박이 하조마을 사람들과‘조화롭게 즐겁게’ 살고자 하는 외지 사람의 소망을 담았다. 그러니까 펜션 이름은 항공사 승무원 출신인 남편의 국제적 감각이 반영된 작품이다.

복 씨는 광양으로 내려오기 전에는 집안 살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남편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늘 음식이 배달돼 왔기 때문에 손에 물을 묻히지 않고 귀부인처럼 편하게 살았다. 그러던 복 씨가 펜션의 안주인이 되면서 거의 중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온몸이 지칠 대로 지쳤다.

돈을 벌기 위해 광양으로 온 게 아닌데 어쩌다 보니 돈을 잡으려 애쓰는 자신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단다. 아이들과 함께해야 할 주말이나 방학 때가 더 바빠 어린 자녀들이 고아처럼 지낼 때, 많이 미안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정신적인 양분을 먹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복씨는 소원한다. “이제 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돈보다도 사랑이 우선이므로 아낌없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아이들이 더 자라버리기 전에 시간도 함께 누리고 싶다. 허둥지둥 반백년을 보냈으니 이제는 차분하게 살고 싶다”고.

하조나라 계곡.
박힌 텃새가 인정하는 굴러온 텃새가 되다

복 씨는 하조마을 어르신들을 만나도, 아이들을 만나도 모두 가족처럼 대한다.

때로는 어르신들께 적극적인 애정 표현을 하기도 한다. 찬바람 불 땐 얼른 장갑을 벗어 끼워드리고 목도리를 풀어 둘러드린다. 아이들과는 봉강초등학교에서 7년째 그림책 읽어주는 재능기부활동을 통해 만난다.

1000포기 이상 김장김치를 담글 때도, 매실 따는 시기에도, 도깨비시장 같은 여름철 장사시즌에도 하조마을 사람들을 고용하였지만 돈을 주고 산 일꾼이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복 씨를 도와주는 사람들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늘 고마웠고 미안했을 뿐이다. 그래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종종 이랬었다.

 “우리가 뭐 공짜로 일하나? 돈 주고 일 시킴서 뭐이 그리 맨날 미안하고 고마운고?”
복 씨는 이처럼 상대방이 양보하면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아는 따뜻한 사람들이 좋다. 자연을 사랑하는, 타인을 배려하고 내 불편을 감내하는,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하조마을 사람들이 좋다.

그래도, 솔직히 파주의 통일동산이 그리울 때가 있다고 고백한다. 복씨 생애 최고의 평온한 시절이라 이름 해도 과언이 아닐 그때가 정말 그립다. 하지만, 언제나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리움을 덮는다.

여기까지, 지금까지 지내온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복씨네 가족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가장 큰 바람이라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내게 주신 달란트로 내 생각만 하며 사는 게 아니라 하조마을의“하모니와 조이”를 위해 자신을 내려놓길 바란다. 

이제 복 씨는 철 좋은 때 하조마을에 잠깐 들렀다 가는 뜨내기 철새가 아니다. 오히려 철새들이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아늑한 둥지를 지키고 가꾸는 텃새가 되었다. 기존의 박힌 텃새가 인정하는 굴러온 텃새로 거듭나게 되었다. /글쓴이 이은철 (광양문화연구회원·광양제철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