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보다 더 재밌는‘야구’
공부보다 더 재밌는‘야구’
  • 이혜선
  • 승인 2014.03.24 10:09
  • 호수 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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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거를 꿈꾸는 당찬 아이들, 광양시리틀야구단



오후 4시, 폐교된 사곡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봉고차 한 대가 천천히 들어온다. 문이 열리자 빨간색 모자와 유니폼을 착용한 아이들이 우르르 내리더니 어느덧 운동장을 뛰며 돌고 있다.

매일 같은 시간, 이곳에서 운동을 하는 아이들은 지난 1월 창단한 광양시리틀야구단(단장 이태호, 감독 정영진)이다.

11명의 아이들은 광양시리틀야구단에서 선수로 뛰고 있다. 취미생활이 아닌 정말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고된 훈련도 마다않는 아이들이다.

이제 2개월 갓 넘긴 야구단이지만 마음은 프로선수들 저리가라다. 감독님의 나지막한 목소리에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훈련에 임하고 있다.



정영진 감독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설렘과 기특함과 안타까움이 서려있었다.

그는 이 아이들을 만나기 전까지 엘리트 야구선수를 육성하는 길을 걷고 있었다. 광주무등중과 진흥고, 인하대를 거쳐 미국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입단하는 등 프로 선수로 활동하다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엘리트 선수 육성에 대한 회의를 느꼈단다.

정 감독은 “학교에서 야구를 가르치다 보면 성과위주로 갈 수 밖에 없어 잘하는 아이들만 이끌어가게 된다”며 “낙오된 아이들이 소외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무척 힘들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강압적인 훈련이 될 수밖에 없고 또 지도자에 대한 억압도 만만치 많아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리틀야구단의 장점은 공부와 운동을 겸할 수 있다는 점, 또 소속이 따로 없기 때문에 성적고민으로 인한 부담이 적다는 점, 선수 하나하나 차별 없이 동등한 훈련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정 감독은 “시합을 빨리 나가 성적을 내야하는 엘리트 야구단과 달리 리틀야구단은 그런 부담이 적어 여유를 갖고 철저한 기본기를 다질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 입장에서도 좋고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훨씬 낫다”고 말했다.

리틀야구단에는 취미로 운동을 하는 선수 12명을 포함에 23명의 아이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그중에는 야구를 하기 위해 순천까지 다녔던 아이들도 있다.

정 감독은 “광양에는 어린 선수들을 키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순천까지 운동을 다녔던 아이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에 리틀야구단 창단 소식을 듣고 옮긴 아이들이 있다”며 “지금은 부모님들도 매우 만족해하며 보내고 계시다”고 설명했다.

이 아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처음 글러브와 공을 잡았다. 딱딱한 야구공이 무서울 법도 한데 이 녀석들 거침없이 던지고 받는다.

그는 “어른들도 겁을 낼 만큼 맞으면 정말 아픈 야구공”이라며 “처음에는 말랑말랑한 공으로 연습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진짜 야구공을 잡을 만큼 아이들 열정이 대단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열악한 훈련 환경이 정말 아쉽다. 아이들이 맘 놓고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이 서글프다.

사회인 야구단이 사용하고 있는 이곳 사곡초 운동장을 양해를 구하고 훈련하고 있다. 밤이 되면 학부모들과 감독의 차량의 라이트를 켜서 훈련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쓸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사라실 예술촌 공사가 오는 5월에 착공하기 때문이다.

정 감독은 “당장 운동할 곳을 찾아야하는데 마땅한 곳이 없다”며 “아이들이 맘껏 공을 던지도 타격할 수 있는 공간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축구 관련 인프라는 충분히 갖춰져 있지만 야구 인프라는 금호동에 있는 야구장 말고는 전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는 “축구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훈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1차 훈련이 끝나자 아이들은 나무그날 아래로 모여들었다. 리틀야구단 학부모회 총무를 맞고 있는 김정수 씨와 장평완씨가 준비한 피자를 한 조각씩 집어 들고는 열심히 먹는다.



‘야구하는 거 어때?’ 라는 질문에 공부보다 더 좋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든다.

송준현 군은 “집에 가서도 야구만 생각난다”며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태양이, 준석이, 준서, 광민이도 야구가 제일 좋단다.

김정수 씨는 “아이들의 야구 사랑을 말릴 수가 없다”며 “몸이 아파도 훈련하러 가겠다는 거 보면 참 기특하기도 하고 그렇게 야구가 좋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광양에서 메이저 리거들이 나오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냐”며 “이 녀석들이 맘껏 꿈을 펼쳐갈 수 있도록 인프라가 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야구를 배워보고 싶은 아이들은 언제든 광양시리틀야구단의 문을 두드리면 된다. 정영진 감독은 “선수들을 보강하기 위해 상시 모집하고 있다”며 “어느 정도 선수단 규모가 완성되면 코치도 한명 더 영입해 좀 더 체계적이고 탄탄한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 이정언 광양시리틀야구단 주장 (광양중1)

앳된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훈련을 막 마치고 온 정언 군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훈련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 는 질문에 정언 군은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을 때도 많지만 포기하고 싶은 적은 없다”며 활짝 웃는다. 정언 군은 리틀야구단원 모집 현수막을 우연히 보고 입단하게 됐다. 야구하고 싶다고 하니 부모님도 흔쾌히 허락을 하셨단다.

방망이에 정확하게 공이 맞을 때 가장 짜릿하다는 정언 군은 “메이저 리그에 뛰는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