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힘세다’는 직위(갑)에 있는 공무원이 관내에 청첩장을 돌려 받은 축의금은 뇌물일까, 선물일까? 이달 초 대법원은 이 돈을 뇌물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김 모 과장이 딸 결혼 때 ‘직무와 관련된’ 업체들에게 청첩장을 돌려 5만~30만원씩 축의금 530만원을 받았다.
김 과장은 관할 사업장의 산업안전을 지도ㆍ감독하는 근로감독관을 지휘하는 직위에 있었다. 근로감독관과 그 상관인 김 과장에게 밉보이면 과태료를 물거나 사업장 가동에 지장을 받는 등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사업장 대표와 근로감독관은 직무 관련자 관계로 분류된다. 대법원은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았다면 사교적 의례 형식을 빌렸더라도 개인적 친분관계가 명백하게 인정되지 않는 한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직무관련자로부터 받은 축의금이 뇌물이라는 판결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대법원 판결과 관계없이도 이미 오래 전부터 공직자들의 윤리교과서로 불리는 공직자행동강령(대통령령)은 직무관련자로부터 단돈 1원도 받을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다. 김 과장의 사례에서 보듯이 공직수행에 있어서 직무의 공정성과 형평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직자행동강령 위반
흔히 힘센 ‘갑’의 위치에 있는 공직자들의 영혼을 파는 축의금 수수 논란과 징계처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용노동부 외에도 동반성장위원회 사무총장이 지난해 초 대기업들에 자식 결혼사실을 알리는 200 여 통의 이메일을 보내 논란이 되자 사퇴했다.
지난 달 충북 제천에서는 정치인들이 축의금을 유권자에게 제공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고발조치됐다. 보도를 보면 강원도내에서도 자주 발생한다. 공복으로서의 청렴의식이 부족하고 행동강령을 모르는 몰지각한 공직자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는 반증이다.
현행 공무원행동강령에 따르면 공무원은 직무관련 여부에 관계없이 ‘통상적의 관례의 범위’에 정하는 기준액, 즉 5만원의 범위에서만 축의금 등 경조금품을 주고받을 수 있다. 다만 공무원과 친족 간에 주고받는 경조금품, 공무원 자신이 소속된 종교 및 친목단체서 제공되는 경조금품은 5만원 기준에 관계없이 수수 가능하다. 또 기관의 장이 정하는 경조사 관련 금품으로 기관 명의의 소속 직원에 대한 경조금과 화환도 가능하다.
또 경조사 통지와 관련 공무원행동강령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신문·방송에 의한 경조사 통지 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이 통지과정에서 직무 관련자나 직무관련 공무원이 알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부하직원이 상급자의 경조사를 상급자의 직무관련자에게 대신해서 알리는 행위도 금지된다.
공직자(공무원과 공직유관단체 임직원)는 명절에 수수하는 선물도 직무관련자로부터 일체 받을 수 없도록 공직자행동강령은 명기하고 있다. 공직수행에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강령에 어긋나는 과도한 선물을 직무관련자로부터 받아 구설에 오르거나 징계 및 소송 시비에 휘말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사정당국은 이맘때면 늘 공직기강 암행감찰에 나선다. 암행감찰보다 더 강도 높고 정확한 감찰수단은 곳곳에 설치된 CCTV(폐쇄회로TV)와 녹음녹화가 수월한 핸드폰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