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과 닿은 우연한 인연, 인생을 바꾸다
국악과 닿은 우연한 인연, 인생을 바꾸다
  • 이혜선
  • 승인 2013.12.30 10:02
  • 호수 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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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올해의 스승상’ 수상한 광양제철초 최창준 교사

 

초임시절, 교장 권유로 배우게 된 단소가 맺어준 국악과의 인연
30년 교사 인생을 국악과 함께 … 제철초와 제철남초 국악관현악단 만들어

 

교단에 올라 선지 벌써 34년이다. 교사 생활을 마무리해 가는 그에게 생각지 못했던 큰 선물이 왔다. 조선일보와 교육부가 주최하고 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후원한 2013 올해의 스승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교사생활을 하면서 국악교육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받게 된 상이다.

광양제철초등학교(교장 고문언) 최창준 선생은 “‘정년퇴임을 정말 거창하게 시켜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최창준 선생은 1979년, 강원도 양구에서 처음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국악의 기억자도 모르던 그에게 그곳 학교 교장은 단소를 배워 아이들에게 가르쳐보라는 권유를 받게 된다.

지금이야 정규교육과정에 단소가 있어 아는 이들이 많지만 1970년대에는 흔치않은 국악기였다. 처음 본 단소, 배워본 적이 없던 단소를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배우기 시작한 최창준 선생은 PVC파이프로 만든 단소를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그때 처음 학생들에게 국악을 지도했다. 소리내기 쉽지 않았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취부를 개량한 단소는 그 시절, 학습자료전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1988년, 여름방학 때 춘천으로 하계 전지훈련을 온 서울청소년 국악관현악단의 합주에 마음을 뺏겨버린 최 선생은 초등학생으로 구성된 국악관현악단 창단을 꿈꾸게 된다.

그는 “몇 십 개의 단소보다 피리 하나의 소리가 더 큰 것이 놀라웠었다”면서 “국악기의 합주를 직접 보고 나니 저거 한번 내가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국악관현악단 창단을 반대하는 교장을 설득하기 위해 생전 써본 적 없었던 사업계획서도 썼다. 김정수 추계예술대 교수의 도움으로 춘천시 부안초등학교에서 1년여의 준비 끝에 43명으로 이뤄진 초등학교 국악합주단을 국내 최초로 창단하게 된다.

부안초 국악합주단은 창단발표회에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게 되고 최창준 교사는 국악지도 교사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최창준 교사는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광양제철초등학교에서 국악지도 교사로 와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렇게 1991년에 광양제철초에 둥지를 틀었다.

최 선생은 “제철초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국악관현악단을 창단하는 것”이었다며 “60명의 학생들로 시작을 했는데 강사 섭외하기가 힘들어 애를 많이 먹었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최창준 교사가 직접 만든 국악 교재들.


그는 “전남대학교를 찾아 강사를 섭외했는데 그때는 교통이 불편하다보니 강사가 2주 수업하러 오고서는 안오겠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여름방학을 이용해 집중 교육을 할 수 밖에 없었다”며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학생들이 새벽까지 연습을 할만큼 정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정기연주회와 지역의 각종 행사에서 국악합주의 실력을 뽐냈던 제철초국악관현악단은 전주대사습놀이에 특별 출연으로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이후 많은 대회에서 최고상을 휩쓸었다.

8년 동안 제철초의 국악교육에 힘쓴 최창준 선생은 제철남초에서 다시금 국악관현악단을 만들어 12년 동안 국악 교육에 매진했다.

일본에서 연주회를 가지며 한일 문화교류 우호증진에도 큰 기여를 했다.


그러는 동안 1998년에는 전통예술 국악 진흥보급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문화관광부장관표창을 받기도 했다. 또, 2003년부터는 일본 와카시마현의 초청을 받아 일본에서도 연주회를 갖는 등 우리 전통문화를 일본에 소개하고 한일 양국 간 우호 증진에도 기여했다.

각종 국악경연대회에 학생들을 입상시키고 지도교사상을 17회나 수상했으며 국악을 배우기 쉽도록 직접 교재를 개발하기도 했다. 최 선생은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사명감을 갖고 임한 것일 뿐 이었다”며 겸손해 했다.

이제 내년 2월이면 교단을 떠나는 최 선생은 인생의 2막에서 또 다른 꿈을 위해 열정을 태울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아들이 중국 양주에서 정착해 생활하고 있는데 그 근처에 최치원기념관이 있어 그곳을 기반으로 해서 한국 아이들에게 한글과 국악을 지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며 “배운 게 가르치는 일밖에 없으니 자꾸 그런 쪽으로만 맘이 간다”고 웃었다.

최창준 선생은 “우리 지역 광양이 그 어느 곳보다 국악, 우리 것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다”며 “시민과 학생들이 좀 더 우리 것에 관심을 갖고 배우려고 하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을 갖춰서 우리 문화를 계승 발전해나갈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