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것도 지나면 다 추억이여~
힘든 것도 지나면 다 추억이여~
  • 이혜선
  • 승인 2013.10.28 09:33
  • 호수 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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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곡면 장동 들판에서 만난 박금순ㆍ정춘자 어르신

청명한 하늘,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치는 가을날, 부지런히 두 손을 바삐 움직이며 고구마 줄기 수확에 여념이 없는 박금순(80·사진 왼쪽)ㆍ정춘자(79·사진 오른쪽) 어르신.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볼까.

박금순 어르신은 성황에서 태어나 19살에 장동으로 시집을 왔다고 했다. 벌써 61년을 이곳에서 보냈으니 세월이 참 빠르다. 5남매 중 장남을 만나 동짓달 추운 계절에 시집와보니 시동생들이 2살, 3살. 손윗사람이지만 자식처럼 키운 시동생들이었다. 

박 어르신도 아들, 딸 낳고 보니 7남매. 시할아버지, 시할머니에 시부모님, 시동생들에 내 새끼들도 줄줄이. 집안일에 농사일에 정신없이 보내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부엌 솥에 밥을 한 솥을 해도 한 끼 먹으면 그만이었거든. 아침, 점심, 저녁 매번 밥을 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지. 거기다가 빨래는 또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허허”

비누가 없는 시절이니 죽정이로 직접 비누를 만들고 양잿물 얻어다 빨래하면 그것도 하루가 금방 간다. 힘들어도 그때는 힘든 줄 몰랐단다. 당연히 그리해야한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밥 짓는 일만큼이나 많이 했던 일은 베 짜는 일이었다.

“밭 14마지기에 목화솜을 심었거든. 목화꽃이 피면 일일이 다 따서 말리고 배틀로 짜는 것이여. 얼마나 짰는지 몰라. 베 짜면 우리 식구들 옷도 해 입고 남은 건 내다 팔아서 살림에 보탰지. 요즘 사람들은 다 사 입으니까 모르재”

누에고치 키워서 비단도 짜고 삼베 키워 모시도 짜고. 몸서리가 나도록 베 짜는 일 많이 했다는 금순 어르신은 힘들어도 재밌었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정춘자 어르신도 20살에 시집와 벌써 60년이 되어간다. 자식 셋 다 키워놓고 요즘엔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낸다. 정춘자 어르신은 “나는 이야기가 별로 없는 사람인께 내 얘기는 싣지 말고 저양반 이야기 많이 실으라며 부지런히 고구마 줄기만 뜯으신다. 한참동안 옛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다 요즘 젊은이들 안쓰럽다는 두 어르신들.

“요즘 젊은 사람들이 힘들재. 집값도 비싸고 아이 키우는데 돈이 많이 들어가니 낳고 싶어도 못 낳고 안쓰러워. 텔레비전 보면은 세상 살기 힘들다고 자살허고 그런 젊은이들 보믄 안타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 랑께”
정춘자 어르신은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좋은 날은 오니까 힘들어도 젊은이들이 이 악물고 버티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해가 넘어가고 어스름이 내려올 무렵 벌써 커다란 바구니 두 개가 고구마 줄기로 가득 찼다. 박금순 어르신의 손이 더 바빠진다. 손 큰 박 어르신은 그냥 보내기 미안하다며 커다란 봉지에 고구마줄기를 양껏 담아 내어주신다.

가을 노을이 비추는 어르신 주름 사이사이에 정이 차곡차곡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