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박혜영 씨의 희망연주
시각장애인 박혜영 씨의 희망연주
  • 정아람
  • 승인 2013.07.08 09:25
  • 호수 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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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나의 기쁨이 되어 주오, 이젠 나의 슬픔이 되어 주오~’
굵게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울려 퍼지는 정수라의 노래 환희. 하지만 연주는 끝이 나지 않는다. 틀리고 또 틀리고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한다.

드럼 소리가 울리고 있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광양지부에서 박혜영(57) 씨를 만났다.  50대 후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동안 외모와 날씬한 몸매 그리고 조곤조곤한 말투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박 씨는 “손자, 손녀도 있는데, 나도 나이 많이 먹었어”라며 쑥스러워한다. 

관리 비법이 뭐냐고 묻자 박 씨는 “뭐든지 열심히 하고 사니까 늙지 않는 것 같다”며 “드럼 연습을 더 부지런히 해야겠다”고 말한 뒤 연습에 매진한다. 눈은 허공을 향해있지만 손만큼은 분주하다. 악보가 아닌 마음으로 연주하는 사람. 모든 것을 소리를 듣고 익혀야 하기 때문에 항상 귀를 열어두어야 한다. 

20년 전 어느 날 저녁, 운전을 하던 중 빛이 휘어져 보이기 시작했다. 야맹증인가 가볍게 생각하고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야맹증일 줄 알았던 두 눈은 야속하게도 망막색소변성증이였다. 광수용체의 기능에 문제가 생겨 나타나는 진행성 질환. 혜영씨의 두 눈은 20년 전부터 지금까지도 진행 중이다.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병, 이제 언젠가 두 눈의 시력이 다 잃게 될 날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래도 박혜영씨는 지금이 참 행복하다고 말한다.

안마와 침을 놔주는 기술을 배워 안마사라는 직업도 있고 시각협회에서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박씨는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은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될 수는 있지만 살아갈 수 없는 이유가 되진 않는다”며 “앞으로도 지금처럼 사랑하는 가족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많이 웃고 행복하게 살고싶다”고 전했다. 

드럼을 열심히 연습해서 국내 최초 시각 장애인 밴드 ‘4번 출구’처럼 공연을 하고 싶다는 그녀. 그녀가 있어 오늘도 인생을 살아가는 용기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