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에서 ‘희망’을 말한다
마을버스에서 ‘희망’을 말한다
  • 정아람
  • 승인 2013.04.22 09:08
  • 호수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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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동 마을버스의 ‘도란도란’ 세상살이


나룻터 횟집을 지나 행복식당을 지나 고요히 흐르는 섬진강 지나 어르신들을 태우고 분홍색 마을버스가 달린다.

35인승의 작은 버스. 이 버스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1~2시간 단위로 10회 운행하고 있다.

광양 지역 내에서 유일하게 마을버스가 다니는 동네 태인동. 이 동네에 마을버스는 어르신들의 다리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침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도 책임지고 있으며 시간별로 태인동의 알짜배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정보통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김두규(56)버스 기사는 2007년 11월1일자로 태인동 마을버스가 생기면서 지금까지 쭉 학생들과 어르신들을 위해 손과 발이 되 주고 있다. 버스정류장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마을버스가 멈췄다. 탑승 문이 아닌 운전기사 쪽에 있는 작은 창문이 열린다. 식당 주인이 명당마을에 있는 한 어르신에게 드려야할 물건을 부탁한다.

김두규 기사는 “아, 알겠어, 5만원 받아오면 되죠?”라며 “기다려요, 금방 갔다올게”라고 창문을 닫고 버스는 다시 출발한다.

덩달아 앞좌석에 앉은 이영휘(86)어르신도 창밖으로 식당주인에게 손 인사를 건넨 후 뭘 또 시킨 거냐며 버스기사에게 묻는다. 교통이 원활하지 않고 걷기엔 너무나 멀기 때문에 종종 이렇게 심부름도 한다는 김두규 기사. 작은 마을버스가 못하는 것이 없다.

태인동 주민센터를 지나 가파른 언덕 위로 다다르니 나눔의 집이 나온다. 바로 여기가 어르신들의 하루 일과 중 꼭 거치게 된다는 목욕탕이 있는 곳이다.

평일 점심은 나눔의 집에서 제공해주기 때문에 목욕도 하고 식사도 해결한다고 한다. 북적거리던 마을버스가 갑자기 한가해졌다.

나눔의 집을 지나 3구로 도착하자 버스기사는 아까 열었던 작은 창문을 통해 식당 주인의 미션을 완료한 후 김시식지가 있는 4구로 출발한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달동네가 보기만 해도 정겹다. 어느새 꽃이 지고 푸른 잎들이 돋아나 태인동은 그야말로 싱그러움 그 자체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에 빠져들고 있을 때 자기 덩치만한 열무를 등에 지고 박순금(75)어르신이 버스에 오른다. 박 어르신은 잘 아는 식당에 열무를 나눠주기 위해 마을버스에 탔다고 했다.

마침 옆에 있던 김우현(86)어르신이 불현듯 박 어르신이 신은 신발을 보고 타박하기 시작한다. 기다렸다는 듯 박순금 어르신은 “안그래도 딸이 20만원짜리 운동화를 사줬는데, 어디 아까워서 신을 수가 있어야지”라며 “장날이라면 또 모를까”라고 웃는다.





김우현 어르신은 “맞아, 비싼거 사줘봤자 구경만 하고 몇 번 신지도 못해 아까워 죽겠다”고 받아친다. 아껴봤자 좋을 것이 하나 없다는 어르신들. 어르신들의 대화 속에서 한 줌의 인생을 배운다.

어느덧 마을버스는 배알도 공원을 지나 도촌 마을로 돌아왔다. 딱 40여분의 여정. 버스정류장에는 또 다른 어르신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야할 목적지가 있고 함께 갈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제 돌아가야 할지 알고 있는 사람들. 내일도 마을버스는 그들을 위해 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