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약사, 커피 한 잔 주소” 진월면 선소리에 있는 광동약방은 오늘도 시끌벅적하다. 윗동네 사는 박성실(69)어르신, 아랫동네 사는 김한규(65)어르신이 하루 한 번 꼭 출석체크를 하는 곳. 바로 광동약방이다.
박성실 어르신은 “꼭 아파야 약국을 오는가?”라며 “여기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정 약사랑 이야기 나누는 것이 약이야”라고 말한다. 박 어르신을 힐끔힐끔 아니꼽다는 듯 쳐다보던 김한규 어르신이 “커피나 한 잔 더 줘봐”라고 소리친다.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커피를 내오는 정필순(77) 광동약방 약업사. 정 약업사는 “이젠 이런 맛으로 약방 하는거야”라고 말하며 웃음을 짓는다.
어느덧 45년. 빠르게 진화하는 사회 속에서도 오랜 시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광동약방. 5평 남짓한 작은 약방이지만 영양제, 감기약, 설사약, 어릴 적 많이 봐오던 양귀비 염색약까지 없는 약 빼고는 다 있다.
약국 한편에 자리 잡은 의자 두 개도 손님을 맞이하고 보내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필순 약업사는 고흥에서 초ㆍ중학교를 졸업후 광주수의고등학교 를 거쳐 광양읍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 진월로 와 약방을 차렸다.
정 약업사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약에 관심이 많았다”며 “공무원은 적성에 맞지 않았고 계속 약 생각이 나 약방을 차렸다”고 말했다.
광동약방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약은 단연 ‘파스’다. 어르신들이 많은 이유 때문이다. 불과 30년 전에는 아이들도 많이 살아 감기약, 일명 빨간약이라고 불리는 포비돈요오드까지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훌쩍 어른이 돼 고향을 떠나고 지금은 대부분 어르신들이 진월을 지키고 있다. 광동약방은 새벽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지만 사실상 24시간 운영하고 있다. 새벽 2시든 3시든 배탈이 나 죽겠다고 손님들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한 번은 새벽에 찾아온 환자가 복통을 호소하는데 평범한 배탈이 아닌 것 같아 병원으로 데려다 주는 등 약업사에 환자까지 이송하고 거기다 보호자 역할까지 맡는 만능약업사가 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진월면 사람들의 쓰고 단 사연들이 약방을 지켜갈 수 있는 이유라는 정약업사.
약방 문을 나서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낫고 싶거든 약방 찾아와~커피 끓여줄게”라고 소리친다.
힘들고 기쁠 때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큼 마음에 힘이 되는 일이 또 있을까. 흘러넘치는 슬픈 사연도 좋고 한 번 했던 말을 두 번 세 번 해도 좋다. 배꼽이 빠질 만큼 웃긴 이야기들은 더더욱 좋다. 이야기보따리 세 개만 들고 온다면 달달한 커피 값으로 충분하다.
고작 5평인 작은 약방이지만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는 소중함을 담고 있는 약방 그리고 그 소중함을 품고 있는 정 약업사에게서 다가올 희망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