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 딛고 희망 찾은 이다솜 ‘닭치시오’ 대표
어려움 딛고 희망 찾은 이다솜 ‘닭치시오’ 대표
  • 정아람
  • 승인 2013.03.04 09:09
  • 호수 5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닭 튀기며 행복도 튀겨요”

광양읍 로터리를 돌아 작은 골목을 들어서면 간판이 눈에 확 띄는 닭집이 하나 있다. 간판을 제외하고는 겉보기엔 별다른 닭집과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뽀얀 피부에 검은 생머리가 눈길을 사로잡는 젊은 대표가 손님을 맞는다. 

눈길을 사로잡는 건 대표뿐만이 아니다. 정겨운 난로와 달달한 팝콘 냄새, 아담하게 꾸며진 내부가 왠지 정감이 간다. 닭 튀기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닭치시오’ 이다솜(25) 대표를 만났다.

이다솜 씨는 어떻게 닭집을 차리게 됐을까. 다솜 씨는 “그러게요. 사람일은 정말 모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는 9살때부터 가야금을 배웠고 꿈도 가야금을 치는 국악인이 되는 것이거든요”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 씨는 순천에서 태어나 금호동에서 유치원, 남초, 중학교를 거쳐 서울예고를 졸업 후 서울예대 입학을 했다. 꿈을 향해 전진하던 중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침만 해도 잘 다녀오겠다며 웃으며 인사를 하고 출근하던 아버지를 그녀의 가족들은 허망하게 보내고 말았다. 하늘이 노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은 막막했다. 가족에게 남은 건 슬픔과 또 하나, 바로 빚이었다.

한 학기에만 등록금이 900만 원 정도되는 예대부터 관둬야 했다. 이 씨 어머니는 꿈을 접어야하는 딸에게 많이 미안해했다고 한다.  

“많이 힘들었어요. 평생 따뜻한 밥, 따뜻한 집에 살면서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못했었거든요. 꿈을 포기하지 말라며 대학대신 군대를 가는 남동생을 보는데 욕심 부려 대학을 다닐 순 없겠더라고요.”

그때부터 이 씨는 빚을 갚기 위해 가족을 살리기 위해 호프집으로 식당으로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지난 9월 닭 집을 차렸고 드디어 4년 만에 빚을 모두 청산했다. 이씨는 “아빠께 떳떳한 딸이 되야겠다는 신념 하나로 이겨내고 살다보니 철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맘 편히 잠을 이룰 수 있어 기쁘다”며 “이게 다 ‘닭치시오’를 사랑해주는 손님들 덕 분에 가능했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어느덧 가야금을 치던 고운 손에는 160도가 넘는 기름에 닭을 튀기며 생긴 영광의 상처들로 가득했다. 
이씨는 “가야금은 하루라도 연습을 하지 않으면 손이 금방 굳는다”며 “어머니는 계속 가야금을 하라고 하지만 닭을 튀기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함박 웃음을 지었다. 

“이 상처들도 다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상처 하나 없이 가장 맛있는 닭을 튀겨낼 수 있겠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손에 새겨진 영광의 상처들을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라고 이다솜 씨는 당차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