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프라이 보면 옛날 추억이 새록새록”
“계란 프라이 보면 옛날 추억이 새록새록”
  • 정아람
  • 승인 2013.02.18 10:07
  • 호수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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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읍 목성리 계란집 운영하는 이석헌 씨

점심시간.
닳고 닳아버린 양푼이 도시락을 열면 입에 밥 넣는 일보다 먼저 하는 일 하나가 있다. 그건 바로 보리밥을 훅 들쳐보는 일.

수업 시간 내내 계란프라이 하나만을 기대했지만 오늘도 계란프라이는 형에게 가버린 것이 분명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어머니가 야속하고 형이 밉기만 하다.

어릴 적 계란을 실컷 먹어보지 못한 서러움도 서러움이지만 가게 하나를 차리기엔 자금이 따라주지 않아 시작하게 됐다는 계란집. 못살던 시절, 계란은 귀중한 식량이자 남에게 자랑해도 손색이 없는 음식이었다. 밥 위에 얹힌 동그란 계란 프라이를 볼 때마다 추억이 절로 떠오른다.

이석헌씨.

광양 5일 시장에서 46여 년째 계란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석헌(73)씨를 만났다. 광양읍 목성리 아리랑바베큐 건너 5일시장 터 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한 ‘광양계란집’은 광양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전통 계란 도ㆍ소매집이다.


이 씨가 처음 계란집을 운영할 때는 1960년대. 경기도 양평이 고향인 그가 광양에 정착한 계기는 당시 경전선이 건설될 때였다. 이때 광양을 찾은 것이 인연이 돼 영원한 광양사람이 됐다. 이 씨는 “이제 광양사람이 된 지도 50년이 다 되간다”며 “되돌아보면 광양도 정말 많이 발전했다”고 말했다.

계란…. 앞에 언급했던 것처럼 계란은 그에게 추억과 애증의 음식이다. 이석헌 씨는 “계란은 맛만 좋은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희망이지”라며 “2남3녀를 다 키우게 해주고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내도 살렸으니 말이야”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10년 전. 계란배달을 하던 중 갑자기 쓰러진 아내. 병원에서는 뇌졸중이라고 했다.

그날 이후 이 씨는 아내 손에 물 한 방울 묻히게 하는 것이 싫어 아침 식사 준비부터 계란집 일까지 모두 혼자서 한다고 한다.

그런 남편에게 미안했는지 아내 박길자(75)씨는 오늘도 이 씨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 계란을 계란판으로 옮기는 이 씨를 미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씨는 “집에 들어가 쉬라고 해도 좀처럼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며 “날도 추운데…”라고 말하며 아내를 지그시 바라본다.

이석헌 씨는 “어려운 경기 때문에 예전만큼 계란집이 잘되지는 않지만 한 푼이라도 모아 아내에게 줄 생각하면 절로 힘이 생긴다”며 “할 줄 아는 것이 계란 장사밖에 없고 죽을 때까지도 계란만 만질 것이다”고 빠른 속도로 계란판에 계란을 담아 옮긴다.

지금처럼 이렇게 계란집을 운영하며 아내와 함께 맛있는 계란프라이를 먹으면서 살고 싶다 는 이석헌 씨의 소망 한 마디에 봄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