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긋불긋 물든 잎들이 지면 새삼 돋보이는 것이 상록수다. 우거진 녹음이 우수수 떨어졌다고 쓸쓸하게 느끼는 것은 한 겨울에도 푸른 잎을 싱싱하게 갖춘 초목의 존재를 가볍게 여긴 것은 아닌지... 늘푸른나무가 아니어도 겨울에 푸르름을 더하는 것들이 주위에 많다. 우리 집 마당의 꽃무릇은 10월에 꽃대가 지면서 나기 시작한 잎들이 치렁거린다. 마을의 텃밭에는 마늘의 새싹이 돋아났고 양파의 어린 모종에는 생기가 돈다. 밀과 보리는 새싹부터 짙은 녹색인데, 곡물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겨울철 산소 공급원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녹색이 사람을 살리고 지구를 보전한다. 그런데, 경제개발이 이뤄질수록 녹색이 점점 사라지며 자연 환경은 위기로 내몰린다. 그래서 21세기 세계의 패러다임은 녹색이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막개발 사업을 하면서도 가짜일지언정 녹색 성장이라고 내세운다. 개발로 치달리던 세계의 ‘주요 20국 정상회의’에서도 ‘기후변화와 녹색성장’이란 의제를 걸고 ‘녹색 규제’를 다룰 수밖에 없다.
다행히 세계인들이 녹색에 공감한다는 지표들이 나타나고 있다. ‘2010 세계 소비자 녹색지수’가 높아졌다. 친환경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소비자가 인도, 브라질, 중국, 미국, 러시아 등에서 크게 늘어난 것이다. 세계의 ‘환경 위기 시계’도 작년보다 3분 느려져 9시 19분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이보다 16분이 빠른 9시 35분이지만, 환경위기를 알리는 시계가 ‘매우 불안’한 시간대에서 조금이라도 거꾸로 돌아갔다는 것은 퍽 반가운 신호다.
환경 재앙은 지역에서 발생하여 인류와 지구 전체의 문제로 번진다. 우리가 사는 광양만 주변도 국가공단과 각종 개발 사업으로 강과 바다가 신음하고, 산과 들이 병들었다. 광양만은 세계의 지난 100년 평균기온 상승보다 2배가 넘게 온도가 상승했고, 이산화탄소의 농도도 평균치를 훨씬 넘긴 상태다. 앞으로 여러 산업단지에 공장들이 더 들어서면 수질과 대기 오염은 더욱더 심해질 것이다. 올 한 해 날씨만 보아도 기후변화를 실감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 지역에서도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고민하고 소통하는 조직들의 다양한 활동이 필요한 터에, “광양만 녹색연합”이 새롭게 창립을 하여 녹색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운동을 펼치려 한다. 광양시는 ‘그린 광양’ 프로젝트를 완성하여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하며, 포스코는 ‘공원 속의 제철소’를 앞세우고 있다. 우리 함께 지켜보며 녹색 미래를 가꾸어야 하겠다. 녹색운동은 누군가가 하겠지 하며 남에게 떠넘길 것이 아니라 다 함께 해야만 하는 일이다. 지구적으로 고민하고 세계의 시민들이 함께하면서 아름다운 지구를 지켜나가는 선한 실천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간을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며 적자 생존한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협력하고 ‘공감하는 동물’이라는 깨달음이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다섯 달째 접어든성탄 전야에 독일군 병사들이 크리스마스트리에 촛불을 붙이고 캐럴을 부르자, 적대하던 영국군 병사들도 함께 나서서 10만 명이 서로 얼싸안고 ‘크리스마스 휴전’을 즐겼다. 보편적인 인간성에 공감한 좋은 사례다. 사람이 근본적으로 정에 민감하고, 우애를 갈망하고, 사교적이며, 공감을 넓히려는 성향을 가졌다면 생물권에서 지속가능한 균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이 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이미 녹색으로 공감하며 미래를 열어가야 할 시대에 들어섰다.
녹색 미래를 공감하는 시민운동, 생태주의의 삶을 실천하는 지역운동의 길에서 서로서로 힘을 더하자. 가치 있는 녹색 활동에 동참하고,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여 어울리는 속에 행복이 깃들 것이다. 늘푸른잎이 겨울에 빛나듯 환경 위기에 녹색 삶이 더욱 돋보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