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그리운 사람들이 전하는 희망이 있었네
그곳에 그리운 사람들이 전하는 희망이 있었네
  • 최인철
  • 승인 2010.05.17 09:09
  • 호수 3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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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년을 맞아 찾아간 봉하마을

택배가 날아들었습니다. 햇살이 아직 여물지 않는 아침인데 참 부지런한 사람인가 봅니다. 종이상자에 찍힌 보낸 사람을 확인해 보니 교보문고. 며칠 전 인터넷으로 주문했던 책들이 보내진 모양이지요. 상자를 뜯어내자 김이 모락모락 날 것 같은 책 세권이 비닐랩에 싸여 수줍은 얼굴을 비로소 보여줍니다.

‘운명이다’
세권 가운데 맨 먼저 손에 잡힌 책의 제목. 그 책을 받아들고 잠시 생각했지요. 봉하마을, 오리농법, 봉화산, 부엉이바위, 노란리본 물결, 담배 한 개비, 자전거, 막걸리, 그리고 노무현 그 사람.

‘운명이다’ 하지만 잔인하지만은 않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봄날 햇살 가운데 그리운 것들이 있다는 일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겠습니까. 기억이라는 게 가끔은 슬픔으로도 침잠되지만 주름 속에서도 맑게 번지는 희망이 되기도 하는 법이니 말입니다.

지난 주 봉하마을을 다녀왔지요. 노무현 서거 1주년이라는 비장함, 울분 그 기분 탓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왜 그래야만 하는 것인지 아무리 제 자신에게 물어도 명확한 정답을 내놓을 수 없지만 살아남아 있는 자의 부채감이랄까, 미안함이랄까, 그런 기분이 8할이었을 테지요.
아니 아니라고 하지요. 다 오월 햇살이 너무 눈부신 탓입니다.


봉하마을 가는 길에서 본 진영읍의 풍경은 아주 낯섭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쳐 진영읍에 이르러서도 기대와는 딴판이지요. 아니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정점을 거쳐 간 사람이 태어나고 자랐을 그 소읍의 모습은 여전히 시가지 정비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것처럼 황량한 모습이네요. 도심의 거리는 아주 좁고 집들은 낡고 퇴색하여 옛 티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겨우 신시가지에 서 있는 아파트 군들이 그나마 변화를 조금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릇 화려함을 바라지는 않았으나 곳곳에 아카시아가 피어나고 새소리가 들리는 시골길을 걷는 기분이겠거니 생각했지요. 그러나 진영읍에서 봉하마을 가는 길은 그렇게 신산스럽습니다. 인심 좋은 시골 아저씨가 들려주는 것 마냥 살갑게 길을 안내하는 안내판도 없지만 간혹 눈에 띠는 ‘노무현 대통령 생가’를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걸어가는 길입니다.

얼마쯤 헤맸을까요. 오래 묵은 시멘트길. 그 길이 낯설지 않습니다. 밀짚모자를 쓴 시골 촌부가 손녀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휘파람을 불며 흘러가던 그 길. 그 환한 웃음이 봄날 햇살보다 눈부셨던, 사진과 텔레비전 속에서만 보던 그 길이 틀림없었으니까 말이지요. 기억의 잔영을 따라가다 보면 드러나는 지난 5월의 환한 그림자.

하지만 곧 변덕 심한 하늘이 비를 뿌립니다. 봄비지요. 예측할 수 없는 날씨 변화가 심한 요즘이어서 그러려니 마음을 접습니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지만 흩날리는 잔비여서 걷는 발걸음이 상쾌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내 봉하마을의 너른 들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그 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논바닥을 헤집고 다니던 오리들 생각이 잠시 날 밖에요. 그 많던 오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하늘은 여전히 개미 혓바닥 정도만큼 봄비를 날리고 있습니다. 기온은 적당하고 바람도 훈훈합니다. 부러 차도를 버리고 논두렁길을 걸어 봉하마을을 향해 발길을 옮깁니다. 마을은 상상했던 것 보다 아주 작습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봉하마을에는 천지사방 가득 사람들이 살고 또 사람들이 다녀갑니다. 사람들이 울고 사람들이 웃습니다. 아직도 빗물이 마르지 않은 도로변과 마을 주차장에는 서너 대의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주차돼 노무현의 긴 그림자를 따라 걷고 있지요. 작은 초가집 생가가 보이고 그 뒤로 노무현 대통령의 사저가 대나무 사이에서 흔들립니다.

노무현 대통령 기념 전시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아주 작은 전시관의 이름이지요. 안으로 들어가 보니 노대통령의 생전 육성 연설이 흘러나옵니다. 참 구수한 음성입니다. 전시관엔 사진, 신문기사 그리고 퇴임 후 농사꾼으로 생활 했던 모습들이 담긴 자잘구레한 것들이 전시 되어있습니다. 초라할 정도이나 초라해서 좋습니다.

노무현 묘역 안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주 작은 비석 묘역 설치 공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국화꽃 한 송이 놓고 돌아오는 길에 마을 구판장에 들러서 막걸리 한 잔씩 했지요. 평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주 들러서 사람들을 만나고 담배 한 개비 맛나게 피우던 곳이지요. 사진 속 그의 얼굴이 웃고 있습니다. 그러나 웃음은 나오지 않았지요.

이제 곧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년이 돌아옵니다. 그는 지난 2009년 5월 23일 스스로 불꽃같은 삶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였지요. 그의 죽음이 현 정권의 정치보복이었든 정치적 타살이든 이제 그것은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 됐습니다. 서둘러 검찰의 수사는 막을 내렸고 진실은 다시 비닐 장막 속에 잠시 묻혀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모진 겨울의 때를 벗어나서 기필코 싹을 틔우는 법이니 그다지 두려워 할 게 못되지요.

그 사이 한국사회는 참 많이 변했습니다. 4대강 사업이 시작됐고, 천안함 침몰사고로 국가가 여전히 슬픔에 빠져들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알리는 서곡이 됐던 촛불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는 국민들이 나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까닭 모르게 가슴이 아립니다. 

하지만 봉하마을에도 봄날은 찾아옵니다. 들녘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고 땅도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고요, 새벽이면 어김없이 농부들의 일손은 바쁩니다. 다시 마을 초입 길을 걸어서 나옵니다. 봉하마을이 멀어집니다. 그 길에서 손녀들을 태우고 함박웃음을 짓던 그 사람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