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도 좋고 하여 술 한 잔 거하게 했다. 기차로 늦게 대전으로 돌아왔다. 대전역에 내리니 한 무리의 허름한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어느 봉사단체에서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대전역에 모이는 노숙자들이 부쩍 많아졌다. 어디서 어떻게들 살아왔던가. 여름이야 날씨가 더우니 한 데서 잔들 대수이랴.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니 역 대합실이나 화장실이 그나마 온기가 있어 이리로들 모이지 싶다. 쓰레기통 앞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니 한 노숙자가 다가 왔다. 쓰레기통을 뒤져 꽁초를 줍는다. 마음이 짠해 담배 갑을 내밀었다. 그냥 다 가져가도 되련만 연신 고개를 주억 그리며 딱 한 개피 만 빼간다. 술 냄새가 풍겼다. 밥은 먹었느냐고 물으니 빵을 먹었단다.
혹자들은 불쌍해서 돈을 줘도 밥 대신 술을 사 마신다며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들 했다. 그래도 주머니를 뒤져 천원 몇 장 건네주었다. 단 돈 몇 천 원이 저들의 일상을 원상회복 시켜 내지는 못 하리란 걸 안다. 이젠 그냥 스쳐 지나침에 익숙할 때도 됐으련만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다.
자취방으로 돌아와 토요일자 신문을 읽었다. 온통 국감 소식인 한편으로 ‘결식아동 방학급식 예산 전액 삭감’이란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보건복지가족부가 결식아동의 급식을 위해 올해 지정한 한시지원금 541억원을 2010년 예산 안에서 전액 삭감했단다.
이 예산은 방학이 되면 무료급식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편성했던 것이다. 복지부는 삭감 이유를 결식아동급식 지원은 지방자치단체에 이양된 사업이라 국비로 지원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교육부도 ‘학생건강증진 및 급식환경 개선 사업비 2억 5700만원을 줄였다. 이대로 간다면 이번 겨울 방학에 25만명이 넘는 아이들이 밥을 굶게 생겼다.더구나 급격한 경기 한파로 급식비를 못 내는 어린이들이 많게는 10배 이상 늘어나고 있는 형국이다. 학교급식 네트워크 자료에 따르면 급식비 미납 학생이 2006년 1만 7351명에서 2008년에는 17만2000여명으로 늘어났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며 중학교까지 의무교육,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가운데 벌어지고 있는 행태이다.
지난 27일, 부산 벡스코에서는 제 3차 경제협력개발기구 세계 포럼이 열렸다.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실질적인 선진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축사했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런 나라에서 미래 한국사회의 성장 동력들이 물로 배를 채우고 급식비를 못 내 자존심에 상처받게 하는가.
마음이 한 없이 무거운데 인터넷에 허파 뒤집어 지는 기사가 올라왔다. 서울 강남의 어느 구청에서 585억원 짜리 동사무소를 짓는단다.
지난주 칼럼에서 올해만 80만톤의 쌀이 남아돌게 생겼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보관비용만도 2400억원이나 된다. 그렇게 쌀을 주체 못하는 한편으로 방학이라 밥을 굶어야 할지도 모를 어린이들이 있다.
OECD 가입 국가에서 삶의 ‘질’이 아니라 최소한 배를 굶는 어린이는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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